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에 들어서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뒤로 젖힙니다. 천장 한가운데에서 손가락 두 개가 닿을 듯 말 듯 마주 뻗어 있는 장면 때문이죠. 그런데 이 천장을 그린 사람은 평생 자기를 화가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여든여덟 해를 산 사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는 1475년 이탈리아 카프레세에서 태어나 1564년 로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든여덟 해를 살았어요. 평균 수명이 훨씬 짧던 시대였으니, 그렇게 긴 생애를 산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습니다.

긴 시간만큼 손댄 영역도 넓었습니다. 대리석을 깎았고, 벽과 천장에 프레스코를 그렸고, 만년에는 건물을 설계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넓게 일한 사람이 정작 자기를 부르는 이름은 하나로 좁혀 두고 있었습니다. 조각가였어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을 맡을 때도 그리 내키지 않아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오늘날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바로 그 일을요.

미켈란젤로 한눈에
태어난 해와 곳
1475년, 이탈리아 카프레세
세상을 떠난 해
1564년, 로마. 여든여덟이었습니다
스스로 부른 이름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
대표 조각
〈피에타〉(1500년 무렵), 〈다비드〉(1501~1504)
대표 그림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1508~1512), 〈최후의 심판〉(1536~1541)
만년의 일
1546년부터 성 베드로 대성당 수석 건축가

조각은 덜어 내는 일입니다

돌 안에 이미 형상이 들어 있고 자신은 그것을 꺼낼 뿐이라는 취지의 말이 그의 것으로 전해집니다. 신비로운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조각이라는 작업의 구조를 그대로 옮긴 말이기도 해요.

그림은 빈 화면에서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색을 하나씩 얹어 나가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위에 다시 덮으면 되죠. 조각은 반대예요. 꽉 찬 돌에서 시작해 필요 없는 부분을 떼어 내며 나아갑니다. 한 번 떨어져 나간 대리석 조각은 다시 붙지 않고요.

덧셈의 회화, 뺄셈의 조각 회화: 없는 것을 더해 갑니다 빈 화면에서 시작 색을 얹어 가며 쌓아 올린 결과 조각: 있는 것을 덜어 냅니다 꽉 찬 돌에서 시작 떼어 내 가며 덜어 낸 결과 같은 형상에 이르는데 출발점이 정반대입니다
회화는 비어 있는 자리에 더해 가고, 조각은 꽉 찬 자리에서 덜어 냅니다. 덮어서 고칠 수 있는 손과 한 번 떼면 되돌릴 수 없는 손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조각가는 돌을 대하기 전에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를 먼저 정해 두어야 합니다. 덜어 내는 손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조각 앞에서 왜 한 바퀴 돌아보라고 하는지는 조각·설치·미디어아트, 어떻게 볼까요?에서 따로 다뤘어요.

이 방식으로 그가 스물다섯 무렵에 내놓은 것이 〈피에타〉입니다. 1498년에 주문을 받아 1500년 무렵 완성했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어요. 죽은 아들을 무릎에 안은 어머니를 대리석 한 덩이에서 꺼낸 작품이죠.

여기에는 이야기가 하나 딸려 있습니다. 완성된 조각을 두고 사람들이 다른 조각가의 솜씨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성모의 어깨띠에 자기 이름을 새겨 넣었다는 겁니다. 후대의 미술사가 바사리가 전한 이야기라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인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서명이 남은 그의 조각이 이 한 점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버려진 돌에서 나온 5.17미터

〈다비드〉는 1501년부터 1504년까지 만들어진 대리석 조각입니다. 높이가 5.17미터예요. 사람 키의 세 배쯤 되는 크기죠.

이 작품의 배경에는 돌 하나의 사연이 있습니다. 그가 받은 대리석은 새로 캐 온 것이 아니라, 앞서 다른 조각가들이 손을 대다 포기하고 오래 방치해 둔 원석이었어요. 이미 누군가의 정이 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는 돌이었던 셈입니다.

덜어 내는 작업에서 이 조건은 까다롭습니다. 이미 사라진 부분은 되살릴 수 없으니, 남아 있는 형태 안에서만 형상을 찾아야 하거든요. 그는 그 안에서 고개를 한쪽으로 돌린 채 몸을 살짝 비틀어 세운 소년을 찾아냈습니다. 완성된 조각은 피렌체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고, 원본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어요.

조각가가 올려다본 천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아담의 창조(The Creation of Adam), 1508~1512,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소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아담의 창조〉, 1508~1512.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두 손가락 사이의 좁은 빈틈이 화면에서 가장 유명한 자리인데, 정작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그에게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을 맡깁니다. 돌을 깎던 사람에게 붓을 쥐여 준 셈이에요. 프레스코는 젖은 회벽에 물감을 얹어 벽이 마르는 동안 색이 벽 자체에 스며들게 하는 기법이라, 그가 익숙하게 다루던 재료와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게다가 화면은 고개를 젖혀야 닿는 높이에 있었고요.

작업은 1512년에 끝났습니다. 4년이 걸린 셈이에요. 천장에는 창세기의 장면들이 차례로 놓였고, 그중 아담과 신의 손가락이 마주 뻗은 〈아담의 창조〉가 가장 널리 알려졌죠. 그림인데도 인물의 몸이 유난히 단단하고 부피감 있게 보이는데, 평생 입체를 다루던 손이 평면으로 건너온 흔적이라는 설명이 자주 따라붙습니다.

조각가로 불리고 싶었던 사람이 가장 유명해진 자리는 결국 천장이었습니다. 내키지 않아 하던 일이 그의 이름을 대신하게 된 셈이죠.

그리고 24년 뒤, 그는 같은 방으로 돌아옵니다. 1536년부터 1541년까지 예배당 제단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렸어요. 천장을 올려다보던 관람객이 시선을 정면으로 내리면, 스무 해 넘게 떨어진 두 시기의 그림이 한 공간에서 이어집니다.

한 공간에 24년 시차로 놓인 두 대작 〈아담의 창조〉 관람객 천장 · 1508~1512 창세기 장면들이 차례로 조각가가 4년을 매달린 자리 제단 벽 · 1536~1541 〈최후의 심판〉 천장을 끝내고 24년 뒤 천장을 올려다본 뒤 정면으로 눈을 내리면 24년이 지나갑니다
같은 예배당 안에서 천장과 제단 벽은 몇 걸음 거리지만, 두 화면 사이에는 24년이 놓여 있습니다. 서른셋에 시작한 천장과 예순을 넘겨 다시 붙잡은 벽이 한 방에 나란히 걸린 셈이에요.

스물세 살 차이의 두 이름

같은 시대 피렌체에는 또 한 사람의 거대한 이름이 있었습니다. 1452년에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 빈치예요. 미켈란젤로보다 스물세 살 위였습니다.

두 사람은 자주 나란히 놓이지만 일하는 방식은 꽤 달랐어요. 다 빈치는 새로운 물음이 생기면 그쪽으로 건너가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끝내지 못한 화면과 두툼한 노트가 함께 쌓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하나를 붙들면 끝까지 파고드는 쪽이었고, 천장 하나에 4년을 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죠. 다 빈치가 어떤 화가였는지는 다빈치 입문에 따로 정리돼 있습니다.

두 사람이 활동한 이 시기를 미술사는 르네상스라고 부릅니다. 사조가 어떤 순서로 이어지고 그 뒤에 무엇이 왔는지 궁금하다면 미술 사조, 5분 만에 따라잡기를 함께 보세요.

마지막까지 놓지 않은 정

1546년, 일흔을 넘긴 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수석 건축가를 맡습니다. 로마의 스카이라인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그 돔의 설계가 이 시기의 일이에요. 돌 한 덩이에서 시작한 손이 도시의 윤곽선까지 간 셈입니다.

그러면서도 손에서 돌을 놓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론다니니 피에타〉를 다듬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요. 스물다섯 무렵의 〈피에타〉가 표면까지 매끈하게 마감된 작품이었다면, 이 마지막 조각은 형태가 아직 돌에서 다 나오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88년은 완성작 목록만으로 요약되지 않아요. 덜어 내는 손이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함께 남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처럼 사람이 몰리는 공간에서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거장전 관람법에, 작품 한 점 앞에 서는 요령은 미술관, 어떻게 봐야 하나요?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언젠가 그 천장 아래에 서게 되거든, 유명한 손가락 두 개만 확인하고 나오지 마세요. 돌을 깎던 사람이 어쩌다 저 높은 자리에 4년을 매달렸는지, 그리고 그림 속 몸들이 왜 하나같이 조각처럼 단단해 보이는지를 함께 떠올려 보면, 천장이 조금 다르게 보일 거예요.

자주 묻는 질문

미켈란젤로는 왜 유명한가요?

조각과 회화와 건축을 모두 최고 수준으로 해낸 드문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5.17미터의 〈다비드〉와 〈피에타〉를 대리석에서 깎아 냈고,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을 그렸으며, 만년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설계했습니다. 세 분야의 대표작이 한 사람 이름 아래 모여 있는 셈이죠.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왜 걸작인가요?

1501년부터 1504년까지 만든 높이 5.17미터의 대리석 조각인데, 재료 자체가 까다로웠어요. 앞서 다른 조각가들이 손을 대다 포기하고 오래 방치해 둔 원석을 받아 완성했거든요. 이미 떨어져 나간 부분은 되살릴 수 없으니, 남아 있는 형태 안에서만 형상을 찾아야 했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는 어떻게 그렸나요?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으로 시작해 1512년에 끝난, 4년짜리 프레스코 작업이에요. 젖은 회벽에 물감을 얹어 벽이 마르는 동안 색이 스며들게 하는 기법이라 고쳐 그릴 여유가 거의 없습니다. 천장에는 창세기의 장면들이 놓였고 그중 〈아담의 창조〉가 가장 널리 알려졌어요.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인가요, 화가인가요?

본인은 스스로를 조각가로 여겼습니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을 맡을 때도 그리 내키지 않아 했던 것으로 전해지죠. 그런데 오늘날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 천장화입니다. 회화가 빈 화면에 색을 더해 가는 일이라면 조각은 꽉 찬 돌에서 덜어 내는 일이라, 두 작업은 출발점부터 정반대예요.

미켈란젤로 작품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다비드〉 원본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습니다. 〈피에타〉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고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와 제단 벽의 〈최후의 심판〉은 바티칸 미술관 관람 동선 안에서 만나게 됩니다. 세 곳 모두 관람객이 몰리는 편이라 예매와 시간대를 미리 챙기는 편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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