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그림 앞에 서면 먼저 눈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땅을 딛고 있지 않아요. 지붕보다 높은 자리에 사람이 떠 있고, 염소와 닭이 그 옆을 함께 지나갑니다. 그런데 화면 안의 누구도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에요.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입니다. 20세기를 거의 통째로 살아 낸 사람이고, 그 긴 세월 동안 놀랄 만큼 같은 것을 되풀이해 그린 사람이기도 해요. 집과 염소와 바이올린, 그리고 하늘에 떠오른 연인들이요.
비텝스크에서 나고 자란 사람
샤갈은 1887년 러시아 제국의 비텝스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늘날 벨라루스에 속한 도시예요. 가난한 유대인 집안이었고, 그가 자란 곳은 화려한 예술 도시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 마을을 먼저 짚어 두는 이유가 있어요. 그의 그림에 평생 나오는 것들이 전부 여기에 있었거든요. 집과 마당의 닭, 염소, 그리고 바이올린을 든 사람이요. 뒷날 그가 파리에 있든 미국에 있든, 화면에 오르는 목록은 이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화가가 소재 하나를 오래 붙드는 일은 드물지 않죠. 다만 샤갈의 경우에는 소재가 아니라 장소 하나가 통째로 평생의 재료가 됐다는 편이 정확합니다.
파리에서 배우되,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고
1910년 무렵 그는 파리로 갑니다. 시기가 공교로웠어요. 그때 파리는 입체파가 형태를 부수고 야수파가 색을 풀어놓던 한복판이었거든요. 회화의 새 문법이 몇 해 사이에 여러 개씩 만들어지던 자리였습니다.
샤갈은 이 소란을 가까이에서 봤고 배울 것은 배웠어요. 그의 화면에서 형태가 각지게 갈라지거나 색이 사물의 실제 색을 떠나는 대목은 이 시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입체파와 야수파가 각각 무엇을 바꾸려 했는지는 미술 사조, 5분 만에 따라잡기에 흐름으로 묶여 있어요.
그런데 그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파리에서 배웠지만 파리의 유파 가운데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어요. 배운 것은 화면을 만드는 방법이었지 무엇을 그릴지가 아니었던 셈입니다. 정작 그가 파리에서 그린 것은 파리가 아니라 비텝스크였으니까요.
이 시기의 대표작이 〈나와 마을〉(1911)입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 파리의 작업실에서 그 마을을 되짚어 그린 그림이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하고 있어요.
러시아에서 나와 서유럽에서 자기 화면을 만든 화가로는 칸딘스키, 눈으로 듣는 그림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간 방향은 정반대였어요. 칸딘스키는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을 화면에서 지워 갔고, 샤갈은 집과 염소와 사람을 끝까지 붙들었습니다.
중력이 통하지 않는 화면
샤갈의 그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사람이 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걸 그저 환상적인 연출로만 읽으면 화면의 절반을 놓치게 돼요.
그의 화면에는 현실과 다른 규칙이 하나 깔려 있습니다. 크기와 위치가 실제가 아니라 감정을 따라간다는 규칙이요. 그리운 것은 위로 떠오르고, 마음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화면에서도 커집니다. 멀리 있는 것이 작아지는 대신 잊힌 것이 작아지죠.
이 규칙을 알고 나면 이상해 보이던 화면이 갑자기 읽을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사람이 왜 떠 있는지 묻는 대신, 무엇이 떠올랐고 무엇이 커졌는지를 보면 되니까요. 현실의 논리가 아니라 기억과 꿈의 논리로 짜인 화면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그림이 처음에 왜 낯설게 느껴지는지는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에서 따로 다뤘어요.
그를 두고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칭이 자주 따라붙습니다. 색이 화려해서라기보다, 색이 사물에서 풀려나 감정 쪽에 가서 붙기 때문에 나온 말에 가까워요.
벨라, 화면을 떠오르게 한 사람
떠오른다는 말이 가장 문자 그대로 쓰인 자리는 연인들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안은 채 하늘로 떠오르는 장면은 그의 그림에서 되풀이되는 모티프예요.
그 중심에 벨라가 있습니다. 1909년 고향 비텝스크에서 만난 연인이고, 1915년에 결혼한 아내예요. 평생의 뮤즈라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두 사람은 그 흔치 않은 경우에 가깝습니다.
벨라는 1944년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샤갈은 그 뒤로 사십 년을 더 살았어요.
떠돌수록 또렷해진 한 곳
샤갈의 생애를 지도 위에 올리면 선이 꽤 복잡해집니다. 러시아 혁명이 있었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었어요. 유대인이자 러시아 출신인 그에게 이 시기는 한자리에 머무는 것이 곧 위험이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비텝스크에서 파리로, 전쟁을 피해 미국을 비롯한 여러 곳으로, 그리고 남프랑스로. 그는 계속 옮겨 다녔고 마지막에는 프랑스 남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1985년 그가 세상을 떠난 곳도 그곳의 생폴드방스예요. 아흔일곱이었습니다.
옮겨 다닌 거리에 비하면 그의 화면은 놀랍도록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있든 그가 그린 것은 비텝스크였으니까요. 몸이 있는 곳과 그리는 곳이 끝까지 어긋나 있었던 셈이죠.
돌아갈 수 없는 자리를 평생 되풀이해 그린 화가는 한국에도 있었어요. 피란지의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함께 있는 장면만 그린 이중섭, 소와 가족의 화가가 그렇습니다. 시대도 언어도 다르지만, 화면이 향한 방향은 닮았죠.
천장과 유리로 옮겨 간 만년
만년의 샤갈은 캔버스 밖으로 나갑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예요. 1964년에 공개됐고, 미술관이 아니라 공연장 천장에 있습니다. 벽에 걸린 그림을 마주 보는 대신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게 되는 그림인 셈이죠.
스테인드글라스 작업도 여러 도시에 남겼습니다. 유리에 그린 그림은 물감으로 그린 그림과 성질이 달라요. 색이 표면에서 반사되는 대신 빛이 색을 통과해 들어오니까요. 색으로 이름이 난 화가가 만년에 이 재료로 건너간 것은 그리 뜻밖의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내에서 그의 작품을 만날 길도 아주 없지는 않아요. 2021년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 마르크 샤갈의 작품이 포함돼 있습니다. 다만 이 컬렉션은 상설 전시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소장품전이나 특별전으로 번갈아 공개되니, 일정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아요. 자세한 사정은 이건희 컬렉션, 어디서 볼 수 있나요?에 정리해 뒀습니다.
- 떠 있는 것부터 찾기
- 화면에서 땅을 딛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먼저 세어 보세요. 떠오른 것이 그 그림에서 가장 그리운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크기를 거리로 읽지 않기
- 크게 그려진 것은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원근이 아니라 비중을 재는 화면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편해요.
- 같은 물건 다시 만나기
- 집과 닭과 염소와 바이올린은 여러 그림에 되풀이해 나옵니다. 다른 작품에서 같은 물건을 또 만나면, 그 그림들이 전부 한 마을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보이죠.
20세기 미술은 무엇을 다음으로 부술 것인가를 두고 앞다투어 움직인 시기였습니다. 그 한복판에 있으면서 샤갈은 부술 것을 찾는 대신 지킬 것을 골랐어요. 어릴 때 살던 마을의 지붕과 짐승과 사람들이요.
다음에 하늘에 뜬 사람이 있는 화면을 만나거든, 왜 떠 있는지 묻지 말고 무엇이 떠 있는지 보세요. 화가가 끝내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 대개 거기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샤갈은 왜 유명한가요?
사람과 동물이 하늘에 떠오르는 화면으로 20세기 미술에서 가장 알아보기 쉬운 그림 언어를 만든 화가입니다. 입체파와 야수파가 들끓던 파리 한복판에서 배우면서도 어느 유파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고향 비텝스크의 기억만 평생 되풀이해 그렸어요. 색을 다루는 솜씨 때문에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칭으로도 자주 불리죠.
샤갈 그림 속 사람들은 왜 하늘에 떠 있나요?
그의 화면이 현실의 논리가 아니라 기억과 꿈의 논리를 따르기 때문이에요. 사람과 동물이 땅을 딛지 않고, 크기와 원근도 실제 거리가 아니라 감정의 크기를 따라갑니다. 그리운 것이 떠오르고 마음에서 큰 자리를 차지한 것이 커진다고 생각하면 화면이 훨씬 쉽게 읽혀요.
샤갈 그림에 자주 나오는 벨라는 누구인가요?
1909년 고향 비텝스크에서 만난 연인이자 1915년에 결혼한 아내예요. 평생의 뮤즈로 불릴 만큼 그의 화면에 되풀이해 등장했고, 하늘에 떠오른 연인들 모티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죠. 벨라는 1944년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샤갈은 어느 사조에 속하나요?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1910년 무렵 파리에서 입체파와 야수파를 가까이에서 보고 배웠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꿈처럼 보이는 화면 때문에 초현실주의와 나란히 묶이는 일이 많은데, 정작 본인은 그 이름과 거리를 두었어요.
샤갈 작품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대표작 〈나와 마을〉(1911)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회화 밖 작업으로는 1964년 공개된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가 있는데, 미술관이 아니라 공연장 천장이라 고개를 젖혀 올려다보게 되는 그림이에요. 여러 도시에 남긴 스테인드글라스도 그의 만년 작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