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국 미술사에 유례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개인 소장품 약 2만 3천 점을 국가와 지역 미술관에 기증한 거예요. 규모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전례가 없어서, 사람들은 이 일을 세기의 기증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정작 많이 받는 질문은 이겁니다. 그래서 그 작품들, 지금 어디 가면 볼 수 있나요? 이 글은 그 질문에 답합니다.

무엇이, 얼마나 기증됐나

기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고미술품과 문화재는 국립중앙박물관과 산하 국립박물관으로, 근현대 미술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갔어요. 여기에 작가의 연고지 미술관들도 기증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약 2만 3천 점, 어디로 갔나 21,600여 점 고미술 · 문화재 국립중앙박물관과 산하 국립박물관 1,488점 근현대 미술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1,369 · 해외 119 연고지 지역 미술관 광주시립 · 전남도립 대구미술관 등
고미술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근현대 미술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그리고 작가의 고향에는 그 지역 미술관으로. 기증의 갈래가 곧 관람 지도가 됩니다.

어떤 작품이 있나

고미술 쪽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입니다. 국보로 지정된 작품이죠. 십장생도나 추성부도 같은 이름난 작품들도 함께 들어왔습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은 그야말로 교과서에 나오는 이름들이 총출동합니다.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유영국, 변관식, 이응노, 권진규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한국 작품만 1,369점이고, 작가 수로는 238명에 이릅니다.

놀라운 건 서양 미술도 함께 왔다는 점이에요. 클로드 모네, 폴 고갱,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국내 미술관에서 이 이름들을 상설로 만나기가 쉽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큰 변화입니다.

클로드 모네, 수련(Nymphéas) 연작 중 한 점, 1906년경, 유화
클로드 모네, 수련(Nymphéas) 연작 중 한 점, 1906년경. 이건희 컬렉션에도 모네의 〈수련〉이 포함되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볼 수 있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하나 짚어야 합니다. 이건희 컬렉션이라는 이름의 상설 전시관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작품들은 각 기관의 소장품이 되어, 소장품전이나 특별전 형태로 번갈아 공개됩니다. 그러니 무작정 찾아가기보다 일정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고미술과 문화재를 보고 싶다면 국립중앙박물관입니다. 김환기와 박수근, 이중섭 같은 근현대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어요. 작가의 연고지에 기증된 작품들은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등에서 그 지역 작가를 중심으로 공개됩니다.

2026년에는 해외 순회전도 이어집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컬렉션이 시카고미술관(2026년 3월부터 7월까지)에 이어 영국박물관(2026년 9월부터 2027년 1월까지)에서도 소개돼요. 국내에서 놓쳤다면 오히려 해외 뉴스로 먼저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멀어서 못 가겠다면 온라인이라는 길도 있어요.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대표 작품 일부는 삼성 아트 스토어의 국립중앙박물관 페이지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대형 기획전으로 열릴 때 사람이 몰리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붐비는 거장전을 알차게 보는 요령은 대형 거장전, 어떻게 봐야 할까요에 따로 정리해뒀습니다.

이 기증이 바꾼 것

숫자보다 중요한 건 이 기증이 메운 공백입니다. 한국 근현대 미술의 걸작 상당수는 그동안 개인 소장으로 흩어져 있어, 미술관에서 통사적으로 보기가 어려웠어요. 기증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은 1만 점을 넘어섰고, 한국 미술사를 실물로 훑을 수 있는 기반이 생겼습니다.

한 사람의 컬렉션이 공공의 자산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미술관과 갤러리의 차이를 알면 더 또렷해져요. 미술관과 갤러리, 뭐가 다른가요에서 그 구분을 정리해뒀습니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도 있어요. 기증 작가 가운데 한 명인 유영국의 역대 최대 회고전이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그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유영국, 한국 추상미술의 뿌리를 먼저 읽고 가면 훨씬 잘 보일 거예요.

언젠가 마주칠 이름들

이건희 컬렉션은 한 번에 다 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닙니다. 여러 미술관에 흩어져, 여러 해에 걸쳐 조금씩 우리 앞에 나타나요.

그러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술관에 갔다가 작품 옆 라벨에서 기증이라는 두 글자를 발견하는 순간이 언젠가 올 거예요. 한국 근현대 거장들이 궁금해졌다면 한국 블루칩 작가로 이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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