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을 조금 알게 되면 이우환, 박서보 같은 단색화 거장의 이름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단색화가 등장하기 전, 한국 추상의 길을 처음 닦은 세대가 있어요. 그 한가운데에 유영국(1916~2002)이 있습니다.
마침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의 탄생 110주년 회고전이 열리고 있어, 입문자가 한국 추상의 뿌리를 만나기에 더없이 좋은 때예요. 오늘은 유영국이 누구이고 무엇을 그렸는지, 그의 그림을 어떻게 보면 좋을지 정리해볼게요. 한국 블루칩 작가에서 다룬 거장들의 바로 앞 세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유영국은 누구인가
1916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난 유영국은 한국 추상미술의 1세대 화가입니다.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문화학원에서 미술을 공부했고(1935~1938), 유학 시절부터 구성주의에 가까운 추상을 실험했어요. 1938년에는 일본의 전위미술 단체전인 자유미술가협회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일찍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광복 후에는 김환기 등과 함께 신사실파, 그리고 모던아트협회를 만들며 한국 모더니즘 미술을 이끌었어요. 사실적인 그림이 주류이던 시절에 추상을 밀고 나간, 길을 내는 화가였습니다.
평생 '산'을 그린 화가
유영국을 한마디로 말하면 평생 산을 그린 추상화가예요. 다만 그는 산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산이라는 자연을 점과 선, 면과 색으로 분해해, 그 구조와 기운만 남긴 비구상의 풍경으로 옮겼죠.
그래서 그의 화면에는 삼각형으로 단순해진 산, 강렬한 원색의 면들이 부딪치고 쌓입니다. 빨강·노랑·파랑의 삼원색을 기본으로 하면서 보라와 초록 같은 변주를 더해, 절제된 구성 속에 자연의 숭고함을 응축했어요.
유영국 그림, 이렇게 보세요
추상이라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세 가지만 따라가 보세요.
- 색
- 원색의 대비. 어떤 색과 어떤 색이 맞붙어 긴장을 만드는지 보세요.
- 형
- 산의 삼각형. 자연의 형태가 어떻게 기하학으로 단순해졌는지.
- 구성
- 면의 균형. 화면이 어떻게 안정과 운동을 동시에 갖는지.
추상화를 보는 더 일반적인 방법은 추상화 감상법에 정리해 두었어요. 유영국처럼 무엇을 왜 단순화했는지가 분명한 작가는, 추상 입문에 특히 좋은 출발점입니다.
한국 추상의 계보 속 위치
유영국의 자리를 알면 한국 미술사가 한 줄로 꿰어집니다.
그는 단색화보다 한 세대 앞선 추상의 개척자예요. 유영국·김환기 같은 1세대가 추상의 토대를 놓았고, 그 위에서 1970년대 단색화가 꽃피웠죠. 사조의 큰 흐름은 미술 사조 5분 정리에서도 볼 수 있어요.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유영국의 세계를 실물로 만날 기회가 열려 있어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가 2026년 5월 19일부터 10월 25일까지 열립니다.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회고전으로, 회화·드로잉·아카이브 등 170여 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고 관람료는 무료예요. 이런 대규모 회고전을 더 알차게 보는 법은 거장전 관람법을 참고하세요.
마무리
추상이 어렵게 느껴질수록, 유영국처럼 무엇을 왜 단순화했는가가 분명한 작가부터 만나면 길이 보입니다. 강렬한 색의 산 앞에 잠시 서 보세요. 한국 추상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그 뿌리가 한눈에 느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