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실 바닥에 앉아 토슈즈 끈을 매만지는 소녀, 무대 옆 어둠 속에서 목을 돌려 몸을 푸는 무용수. 미술관에서든 엽서에서든 한 번쯤 스쳤을 장면입니다. 에드가 드가의 그림이에요. 그림은 이렇게 익숙한데, 정작 이 장면 앞에서 잘 던지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화가는 그때 어디에 서 있었을까요. 답은 객석이 아닙니다. 드가가 자리를 잡은 곳은 늘 무대 뒤, 박수가 닿지 않는 쪽이었어요.

첫 인상파전을 열고도 그 이름은 거부했어요

에드가 드가(Edgar Degas)는 1834년 파리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나 1917년 같은 도시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든세 해의 생애였어요.

집안이 넉넉했다는 사실은 그의 이력에서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그림을 팔아 당장 밥을 벌 이유가 없었으니, 팔릴 만한 그림을 고민하는 대신 자기가 오래 보고 싶은 것을 붙들 여유가 있었거든요.

1874년 봄, 파리에서 화가들이 아카데미 바깥에서 자기들끼리 첫 전시를 엽니다. 훗날 인상주의라 불리게 될 그 자리를 함께 조직한 핵심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 드가였고, 이후 이어진 전시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어요. 그런데 정작 그는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눈앞의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사실주의자이고, 어느 유파에도 매이지 않은 독립파라고 여겼죠.

고집만 부린 게 아니라 그림이 실제로 달랐습니다. 모네가 야외에서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을 좇고 르누아르가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을 그릴 때, 드가는 실내에 있었어요. 그가 다룬 빛은 대개 창밖의 햇살이 아니라 무대를 비추는 가스등, 연습실 천장에서 내려오는 인공조명이었습니다. 이 첫 전시가 미술사 어디쯤 놓이는지는 미술 사조, 5분 만에 따라잡기에서 흐름으로 짚어볼 수 있어요.

다른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인상주의라고 하면 눈에 들어온 순간을 즉흥적으로 낚아채는 그림을 떠올리기 쉬운데, 드가의 화면은 즉흥과 거리가 멀었어요. 같은 자세를 수없이 다시 그리고, 인물의 위치를 몇 번씩 옮기고, 데생을 겹겹이 쌓은 끝에 나온 것이 그 '우연히 본 듯한' 장면이었습니다. 즉흥처럼 보이도록 계산한 그림에 가까웠던 셈이죠.

드가는 인상파전을 함께 열었지만 빛을 좇아 야외로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고른 자리는 조명이 켜진 실내였어요.

무대 뒤의 관찰자

드가가 무용수를 그린 기간은 반세기에 가깝습니다. 남긴 작품 수로 보면 그의 작업 전체에서 가장 큰 덩어리예요.

그런데 그가 고른 순간이 특이합니다. 발레 그림이라고 하면 보통 조명을 받으며 도약하는 절정의 장면을 떠올리죠. 드가의 화면에는 그런 순간이 오히려 드뭅니다. 대신 이런 것들이 있어요. 바닥에 주저앉아 발목을 주무르는 무용수, 등을 젖혀 기지개를 켜는 사람, 무대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어깨가 늘어진 뒷모습, 끈을 고쳐 매느라 숙인 목덜미. 공연이 시작되기 전과 끝난 뒤, 아무도 자기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무용수만 그린 것도 아니에요. 다림질을 하다 하품하는 세탁부, 손님에게 모자를 씌워 보는 가게 점원처럼 일하는 여성들이 그의 화면에 자주 등장합니다. 공통점은 분명해요. 모두 몸을 써서 일하는 중이고, 그 노동이 만든 피로가 자세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대목을 짚고 가야겠어요. 그가 그린 어린 무용수들은 파리 오페라 극장에 딸린 가난한 집 소녀들이었습니다. 무대에 서기까지 고된 훈련을 견뎌야 했고, 그 자리가 집안의 생계와 이어져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죠. 드가의 그림이 이들을 곱게 꾸미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그는 발레를 우아한 세계로 낭만화하는 대신, 그 우아함이 어떤 노동 위에 서 있는지를 봤습니다.

화면 밖으로 걸어 나가는 인물

드가의 그림을 처음 보면 어딘가 어긋난 느낌을 받는 분이 많아요. 주인공이 한가운데 없거든요.

인물이 화면 가장자리에서 뭉텅 잘려 나가고, 정작 화면 한복판은 텅 빈 마룻바닥인 경우가 흔합니다. 시점도 낯설어요. 객석에 앉은 눈높이가 아니라 위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거나,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석에서 올려다본 각도로 그려집니다.

같은 무용수, 프레임을 어디에 두느냐 반듯한 구도 가운데 세우고 전부 담기 위에서 비스듬히 드가의 구도 가장자리에서 자르고 내려다보기
화면 한가운데 반듯이 세우는 대신, 드가는 인물을 가장자리에서 자르고 비스듬히 내려다봤어요. 우연히 찍힌 스냅사진처럼 보이는 이 화면은 사실 한 뼘씩 옮겨 가며 맞춘 배치입니다.

이 낯선 구도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진이에요. 드가가 활동하던 시기에 사진이 빠르게 보급되는데, 사진은 회화가 하지 않던 일을 했습니다. 프레임에 걸린 것을 가차 없이 자르고, 어쩌다 들어온 것을 그대로 남기는 일이죠. 다른 하나는 일본 판화입니다. 파리에 들어온 우키요에는 인물을 화면 끝으로 밀고 대각선으로 공간을 가르는 구성을 즐겨 썼고, 드가를 비롯한 여러 화가가 여기서 힌트를 얻었어요.

중요한 건 그가 이걸 흉내만 낸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배치를 일부러 설계했으니까요. 잘려 나간 인물도, 비어 있는 바닥도, 기울어진 시선도 전부 계산의 결과입니다. 사진이 얻어걸린 우연을 드가는 손으로 다시 만들어 냈어요.

어두워지는 눈, 만져지는 재료

드가의 시력은 30대부터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이후 평생에 걸쳐 서서히 악화됐고, 만년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됐어요.

화가에게 이보다 가혹한 일은 드물 겁니다. 그런데 그가 택한 대응이 흥미로워요. 붓을 놓는 대신 재료를 바꿨거든요.

1880년대 중반부터 파스텔이 그의 주요 매체가 됩니다. 파스텔은 안료를 막대 모양으로 굳힌 재료라, 물감처럼 섞고 마르기를 기다리는 과정 없이 종이 위에 곧장 그을 수 있어요. 선을 긋는 동작이 곧 색을 올리는 동작이 되는 재료인 셈이죠. 유화와 아크릴, 수채화가 각각 어떤 재료인지는 유화, 아크릴, 수채화, 뭐가 다른 건가요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그리고 조각이 있습니다. 만년으로 갈수록 그는 밀랍과 점토로 무용수와 말의 형태를 빚는 일에 시간을 들였어요. 눈이 확인해 주지 못하는 것을 손이 대신 확인하는 매체였으니까요.

눈이 흐려질수록 손에 가까운 재료로 시야 유화 이른 시기 물감을 섞어 색을 맞추고 떨어져 서서 확인해요 시야 파스텔 1880년대 중반부터 막대를 쥐고 선과 색을 화면에 곧장 올려요 시야 조각 만년으로 갈수록 밀랍을 손으로 빚으며 만져서 형태를 잡아요 눈에 기대는 작업 손에 기대는 작업
시력이 나빠지는 동안 드가가 옮겨 간 재료들은 공교롭게도 점점 손에 가까운 것들이었어요. 파스텔은 선과 색을 한 번에 올릴 수 있었고, 조각은 눈 대신 손으로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881년 여섯 번째 인상파전에 그는 조각 한 점을 내놓습니다.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예요. 밀랍으로 소녀의 몸을 빚고 거기에 진짜 튀튀와 머리 리본을 입힌 작품이었습니다. 대리석도 청동도 아닌 밀랍에 실제 천을 걸친 인물상이었으니, 당시 조각이 지키던 관습을 거의 전부 어긴 셈이었죠.

반응은 둘로 갈렸습니다. 소녀의 얼굴을 미화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못생겼다"는 혹평이 쏟아진 한편, 밀랍의 살결과 진짜 옷감이 만들어 낸 사실성에 충격을 받은 사람도 많았어요. 어느 쪽이든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다는 뜻입니다.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 한눈에
공개
1881년, 여섯 번째 인상파전
재료
밀랍으로 빚은 몸에 실제 튀튀와 머리 리본
당대 반응
못생겼다는 혹평과 놀라운 사실성이라는 충격이 함께
남은 것
드가가 생전에 공개한 유일한 조각. 여러 미술관의 청동상은 모두 사후에 주조된 것

관찰이라는 재능

드가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본 것을 정확히 옮긴 사람입니다. 다만 그 정확함은 사진기의 정확함과 결이 달랐어요. 그는 대상이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순간이 아니라 가장 사람다워 보이는 순간을 골랐습니다. 무대 위의 절정이 아니라 그 앞뒤에 놓인 지친 시간을요.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보는 순서를 한 번 바꿔 보시길 권해요. 무용수의 얼굴부터 찾는 대신, 화면이 어디에서 잘렸는지 그리고 내가 어느 높이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 보세요. 그 자리가 바로 드가가 서 있던 자리입니다. 작품 앞에서 시선을 어떻게 굴릴지는 미술관, 어떻게 봐야 하나요에 따로 모아 뒀어요.

눈이 어두워지는 동안에도 그가 끝내 놓지 않은 것은 결국 보는 일이었습니다. 보이지 않게 되자 손으로 보기 시작했을 뿐이에요.

자주 묻는 질문

드가는 왜 유명한가요?

1834년 파리에서 태어나 1917년 세상을 떠난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는 발레 무용수를 그린 화가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요. 인물을 화면 가장자리에서 자르고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낯선 구도를 만들어, 이후 회화가 장면을 잡는 방식 자체를 바꿔 놓은 인물로 꼽힙니다.

드가는 인상파인가요, 아닌가요?

둘 다 맞는 답입니다. 그는 1874년 첫 인상파전을 함께 조직했고 이후 전시에도 꾸준히 참여한 핵심 멤버였어요. 다만 본인은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사실주의자이자 독립파로 여겼습니다. 야외의 빛을 좇는 대신 실내와 인공조명 아래에서 그렸다는 점도 동료들과 달랐죠.

드가는 왜 발레리나를 그렸나요?

무대 위의 화려한 공연보다 그 앞뒤의 시간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연습실 바닥에서 발목을 주무르거나 차례를 기다리며 어깨가 늘어진 순간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의 몸을 반세기 가까이 관찰했습니다. 세탁부나 모자 가게 점원처럼 몸을 써서 일하는 여성들도 같은 눈으로 그렸어요.

〈열네 살의 어린 무용수〉는 어떤 작품인가요?

1881년 여섯 번째 인상파전에 나온, 드가가 생전에 공개한 유일한 조각입니다. 밀랍으로 소녀의 몸을 빚고 진짜 튀튀와 머리 리본을 입힌 파격적인 작품이었어요. 얼굴을 미화하지 않았다는 혹평과 놀라운 사실성이라는 충격이 동시에 쏟아졌습니다. 여러 미술관에 있는 청동상은 모두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주조된 것입니다.

드가 그림은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요?

인물의 얼굴부터 찾기보다 화면이 어디에서 잘렸는지를 먼저 보세요. 그다음 내가 이 장면을 어느 높이에서 보고 있는지 가늠해 보면 좋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각도인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각도인지가 곧 드가가 서 있던 자리예요. 우연히 찍힌 스냅사진처럼 보이는 배치가 사실은 계산된 설계라는 점을 기억하면 화면이 다르게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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