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는 야외 무도회장,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이 웃고 춤추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달력에서, 카페 벽에서, 퍼즐 상자에서 한 번쯤 스쳤을 장면이에요.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입니다. 화면이 워낙 밝고 사랑스러워서 편하게 보고 지나치기 쉬운데, 정작 그는 인상주의를 처음 연 창립 멤버 가운데 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왜 하필 즐거운 순간만 골라 그렸는지 물어보면, 이 밝음이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접시에 그림을 그리던 소년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는 1841년 프랑스 리모주에서 태어나 191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흔여덟 해의 생애였어요.
집안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재단사였고, 가족은 그가 어릴 때 파리로 옮겨 갔어요. 아이의 그림 솜씨를 알아본 부모가 그를 보낸 곳은 미술학교가 아니라 도자기 공방이었습니다. 열세 살, 르누아르는 접시와 컵에 꽃과 인물을 그려 넣는 화공으로 일을 시작해요.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작고 둥근 곡면 위에 그림을 앉혀야 했고, 붓은 빠르면서도 정확해야 했으며, 색은 가마에서 구워 낸 뒤에도 화사해야 했죠. 그런데 몇 해 지나지 않아 무늬를 기계로 찍어 내는 인쇄 기술이 보급되면서 손으로 그리던 화공들의 일자리가 사라집니다. 밥벌이를 잃은 그는 그 길로 회화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이 출발점은 끝까지 남습니다. 르누아르의 화면이 유난히 매끄럽고 색이 달콤한 것, 어려운 관념보다 눈이 먼저 즐거운 그림을 생각한 것. 장식의 손끝에서 그림을 배운 사람의 습관이었죠.
강가에서 태어난 인상주의
파리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절, 르누아르는 비슷한 처지의 젊은 화가들과 어울립니다. 그중 한 사람이 클로드 모네였어요.
1869년 여름, 두 사람은 파리 근교의 물놀이터 라 그르누예르(La Grenouillère)에 나란히 이젤을 세웁니다. 주말이면 파리 사람들이 몰려와 물에 뛰어들고 보트를 타던 유원지 같은 곳이었죠. 여기서 둘이 마주한 문제는 똑같았습니다. 물결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그 위에서 부서지는 햇빛은 더 빠르게 달아났거든요.
형태를 정성껏 다듬을 시간이 없으니 방법은 하나였어요. 짧고 빠른 붓자국으로 빛의 얼룩을 그 자리에서 찍어 두는 것. 훗날 인상주의라 불릴 기법이 이 강가에서 무르익습니다. 재미있는 건 같은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봤는데도 두 화면이 달랐다는 점이에요. 모네의 물이 더 차갑고 투명했다면, 르누아르의 물에는 사람들의 몸짓과 웃음소리가 함께 담겼습니다.
1874년 봄, 아카데미 바깥에서 화가들이 자기들끼리 연 첫 전시에 르누아르도 이름을 올립니다. 인상주의의 출발점이 된 그 자리에 창립 멤버로 있었던 거예요. 조롱에서 시작된 이름의 내력은 모네 입문에, 이 사조가 미술사 어디쯤 놓이는지는 미술 사조, 5분 만에 따라잡기에 정리해 뒀습니다.
동료들이 풍경으로 갈 때
인상주의라고 하면 대개 풍경이 먼저 떠오릅니다. 모네의 연못, 시슬레의 들판, 피사로의 시골길처럼요. 그런데 르누아르는 같은 기법을 들고 다른 쪽으로 갔어요. 그가 화면 한가운데 세운 것은 거의 언제나 사람이었습니다. 무도회장, 뱃놀이, 극장의 관람석, 피아노 앞에 앉은 소녀들.
1876년작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가 그 정점이에요. 몽마르트르 언덕의 야외 무도회장에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있습니다. 춤추는 짝, 의자에 걸터앉아 이야기하는 무리, 저편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얼굴. 그런데 이 그림의 주인공은 사람만이 아니에요. 나뭇잎 사이로 새어 든 햇빛이 얼룩덜룩한 조각이 되어 옷과 얼굴 위에서 어른거리고 있거든요.
당시 관객에게는 이 얼룩이 몹시 낯설었습니다. 사람 얼굴에 정체 모를 보랏빛 반점이 찍힌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인상주의가 발견한 사실이었어요. 야외에서 빛은 대상을 고르게 비추지 않고, 나뭇잎이 걸러 낸 만큼만 조각조각 떨어진다는 것. 이 그림은 1877년 세 번째 인상파전에 걸렸고,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그림은 즐겁고 사랑스러운 것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어요. 힘든 일은 세상에 이미 충분하니 화면에까지 들일 이유가 없다고 본 셈이죠. 동료들이 자연으로 흩어지는 동안 그는 사람이 가장 사람다워 보이는 순간에 머물렀습니다.
굳은 손, 멈추지 않은 붓
1880년대에 들어 르누아르는 자기가 익힌 기법에 회의를 품습니다. 빛의 얼룩을 좇다 보니 형태가 자꾸 녹아 흐트러진다고 느낀 거예요. 이탈리아에서 옛 거장들의 그림을 보고 돌아온 뒤로는 한동안 윤곽선이 또렷한 고전풍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인물의 선은 단단해졌지만 화면은 예전만큼 숨 쉬지 않았죠. 몇 해 뒤 그는 이 시기를 지나 다시 부드러운 자기 화풍으로 돌아왔고, 두 방향이 합쳐진 자리에서 만년의 그림이 나옵니다.
정작 그를 가로막은 것은 화풍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1892년 무렵부터 류마티스 관절염 증세가 시작됩니다. 병은 해가 갈수록 심해져 손가락 관절이 굳고 모양이 변형됐고, 말년의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작업했습니다.
여기서 널리 퍼진 이야기 하나를 바로잡고 가야겠어요. "말년의 르누아르는 붓을 손에 묶고 그렸다"는 대목입니다. 감동적인 장면이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어요. 그는 변형된 손과 살갗이 쓸리지 않도록 붕대나 천을 감고 있었고, 손이 굳어 붓을 집기 어려워지자 조수가 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워 주었습니다. 그다음은 그가 직접 쥐고 그렸어요. 묶인 손이 아니라 쥔 손이었던 거죠. 붕대 감은 손에 붓이 놓인 모습이 사람들 입을 거치며 '묶었다'로 굳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잡아도 남는 것이 있어요. 몸이 그 지경이 되도록 그는 붓을 놓지 않았고, 그렇게 그린 그림이 어둡지도 원망스럽지도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고통이 화면에 비치지 않는 것. 르누아르라는 화가의 가장 이상한 점이자, 그를 기쁨의 화가로 부르게 만든 이유예요.
기쁨은 그가 고른 태도였어요
르누아르를 보러 파리까지 가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그의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왔거든요. 국내 미술관에서 인상파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반가운 변화입니다. 무엇이 어디로 갔는지는 이건희 컬렉션, 어디서 볼 수 있나요에 정리해 뒀어요.
그의 태도는 뒤 세대로도 이어집니다. 마티스는 지친 사람을 쉬게 하는 '좋은 안락의자' 같은 그림을 이야기했는데, 보는 사람을 뒤흔들기보다 편안하게 만들려는 이 계보의 앞자리에 르누아르가 있어요.
밝은 그림은 종종 깊이가 없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하지만 굳은 손으로 마지막까지 즐거운 장면을 그린 사람을 알고 나면, 그 밝음이 세상 물정 모르는 낙천이 아니라 끝까지 지켜 낸 태도였다는 게 보이죠. 미술관에서 햇빛 얼룩이 어른거리는 그림을 만나거든 사람들의 표정보다 그 위에 떨어진 빛 조각을 먼저 찾아보세요. 그림 앞에 서는 요령은 미술관, 어떻게 봐야 하나요에 따로 모아 뒀습니다. 르누아르가 진짜로 붙잡으려던 것은 거기, 어른거리는 빛 안에 있어요.
자주 묻는 질문
르누아르는 어떤 화가인가요?
1841년 프랑스 리모주에서 태어나 1919년까지 활동한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1874년 첫 인상파전에 참여한 창립 멤버였고, 동료들이 풍경으로 향할 때 무도회와 뱃놀이 같은 사람들의 즐거운 한때를 주로 그렸어요. 밝고 사랑스러운 화면 덕분에 기쁨의 화가로 불립니다.
르누아르와 모네는 어떤 사이였나요?
파리에서 그림을 배우던 시절에 만난 동료이자 친구였습니다. 1869년 여름에는 파리 근교의 물놀이터 라 그르누예르에 나란히 이젤을 세우고 같은 풍경을 그렸는데, 이때 짧고 빠른 붓질로 빛을 붙잡는 인상주의 기법이 무르익었어요. 두 사람 모두 1874년 첫 인상파전의 창립 멤버였죠.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돼 있습니다. 1876년에 그린 작품으로, 몽마르트르 언덕의 야외 무도회장에 모인 사람들과 나뭇잎 사이로 떨어진 햇빛 얼룩이 함께 담겨 있어요. 1877년 세 번째 인상파전에 걸렸던 그림이기도 합니다.
르누아르가 말년에 붓을 손에 묶고 그렸다는 게 사실인가요?
널리 퍼진 이야기지만 정확하지 않습니다. 1892년 무렵 시작된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손가락이 굳자 조수가 손가락 사이에 붓을 끼워 주었고, 그다음은 르누아르가 직접 쥐고 그렸어요. 변형된 손을 보호하려 감아 둔 붕대가 붓을 묶은 것처럼 전해진 듯합니다. 휠체어에 앉아 마지막까지 그렸다는 사실은 그대로예요.
한국에서 르누아르 작품을 볼 수 있나요?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르누아르의 작품이 들어왔어요. 다만 소장품은 전시 일정에 따라 걸리고 내려가니, 방문 전에 미술관 공식 안내로 전시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