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되면 볼 만한 전시가 한꺼번에 늘어납니다. 반가운 일이지만, 목록을 펼쳐 놓고 보면 오히려 고르기가 어려워져요. 어디가 제일 좋은지부터 따지게 되니까요.
순서를 정하는 더 쉬운 기준이 있습니다. 문 닫는 날이에요. 전시마다 끝나는 날이 다르니,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부터 채워 넣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자리를 찾거든요. 2026년 10월 23일 기준으로 서울과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전시를, 언제 가야 하는지에 따라 묶어봤습니다. 가을에 미술 행사가 몰리는 이유 자체가 궁금하다면 미술의 1년은 왜 가을에 몰릴까를 먼저 보고 오셔도 좋아요.
9월 30일, 고야전은 먼저 막을 내렸습니다
가장 먼저 끝난 건 예술의전당이었습니다.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의 《스페인의 거장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가 2026년 9월 30일에 막을 내렸거든요. 6월 26일에 시작해 석 달 남짓 이어졌고, 9월의 마지막 날이 이 전시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를 국내에서 단독으로 조망한 첫 전시였어요. 궁정화가로 왕실을 그리던 시절에서 출발해, 청력을 잃고 전쟁을 겪은 뒤의 판화를 지나, 말년의 '검은 그림들'에 이르는 한 사람의 궤적을 여섯 구역으로 따라갔습니다. 판화 연작 〈카프리초스〉 80점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것도 이 전시의 중심이었고요. 다만 유화 원화는 오지 않은, 판화와 자료 중심의 전시였습니다. 〈카프리초스〉도 1799년 초판이 아니라 스페인 왕립 미술 아카데미가 1881년에서 1886년 사이에 고야의 원판으로 다시 찍은 판본이었죠. 전시를 놓쳤더라도 고야가 어떤 화가였는지는 고야, 궁정의 빛에서 검은 그림까지에서 따라가 볼 수 있어요.
대형 기획전은 대개 종료 1~2주 전에 가장 붐비는데, 인파 속에서 거장전을 도는 요령은 대형 거장전, 어떻게 봐야 할까요?에 따로 정리해 뒀어요.
겨울까지 열려 있는 전시들
9월에 새로 연 전시 상당수는 12월까지 갑니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뜻이에요. 오히려 개막 직후의 붐빔을 피해 10월이나 11월 평일에 가는 편이 낫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서도호》는 그보다 조금 이른 8월 27일에 개막해 2027년 2월 9일까지 열립니다. 반투명한 천으로 지은 집들과 살던 집의 표면을 종이에 문질러 뜬 〈러빙/러빙〉 연작을 비롯해, 유년기 드로잉부터 대표작까지 500여 점이 지하 1층 3·4·5전시실과 2층 MMCA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펼쳐져요. 연대순으로 칸을 나누지 않고 앞뒤 시기의 작업이 서로를 비추도록 엮은 구성이고, 12월 18일부터 2027년 3월 28일까지는 서울박스에 대형 설치작이 따로 들어섭니다. 작가 이야기는 서도호, 집을 옮기는 사람에, 관람 안내는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사이트에 있어요.
리움미술관에서는 《구정아: 우스모스》가 9월 5일부터 12월 27일까지 열립니다. 구정아는 제60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였고, 이번이 30여 년의 작업을 모은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관 개인전이에요. 작품이 M2 전시실 안에만 머물지 않고 로비와 고미술 상설전시실, 심지어 창밖 옹벽 틈까지 흩어져 있어서, 찾아내는 일 자체가 관람의 일부가 됩니다.
용인의 호암미술관에서는 《2026 아트스펙트럼》이 9월 1일부터 12월 27일까지 이어집니다. 부제가 조금 길어요. 《방이있고모든라디오가각기다른주파수를향하고있다》입니다. 파리의 팔레 드 도쿄와 공동기획했고 10개국 23명(팀)이 참여하는데, 제목이 이미 이 전시의 태도를 말해주죠. 하나의 메시지로 묶기보다 서로 다른 주파수를 그대로 켜 두는 쪽을 택했거든요.
용산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Sol LeWitt: Open Structure》가 9월 1일부터 2027년 2월 28일까지 열립니다. 개념미술의 선구자 솔 르윗(Sol LeWitt, 1928~2007)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으로, 지시문에 따라 전시장 벽에 직접 그린 월 드로잉 13점을 비롯해 구조물과 회화, 판화 등 45점이 나왔어요. 관람 안내는 리움·호암미술관과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공식 사이트에 있어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는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가 9월 22일부터 2027년 1월 20일까지 열립니다. 뉴욕 히스패닉 소사이어티 박물관 & 도서관의 소장품 95점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로, 엘 그레코의 〈성가족〉(1585년경)과 벨라스케스·고야의 초상화가 함께 나왔어요. 셋 가운데 가장 앞 세대인 화가는 엘 그레코, 하늘로 길게 늘인 사람들에서 먼저 만나 보셔도 좋고요. 관람 안내는 예술의전당 공식 사이트에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올해의 작가상 2026》도 12월 6일까지 열려 있습니다. 7월 24일에 시작해 이해민선, 이정우, 전현선, 홍진훤 네 작가의 신작을 함께 보여주는데, 최종 수상자는 2026년 10월 28일에 발표될 예정이에요. 발표 전에 먼저 보고 각자 마음속으로 점찍어 두는 것이 이 전시의 오래된 재미입니다. 자세한 안내는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사이트에 있고요.
10월에 문을 연 전시
10월에 문을 연 전시도 있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의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이 10월 21일에 개막해 2027년 2월 21일까지 열립니다.
린 허쉬만 리슨(1941~ )은 미국의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입니다. 60여 년 동안 인간과 기술의 관계, 감시,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붙들어 왔고, 이번이 아시아에서 여는 첫 미술관 개인전이에요. 인공지능이 일상어가 된 시기에 그 오래된 질문들을 한자리에서 되짚는 셈이라, 전시장을 나오며 생각거리를 챙겨 오고 싶은 사람에게 특히 맞습니다.
관람 시간과 예매 안내는 서울시립미술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세요.
서울 밖에서는 비엔날레가 기다립니다
서울을 벗어나면 훨씬 긴 전시가 둘 있습니다.
2026부산비엔날레는 8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65일간 열립니다. 주제는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이고, 부산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영도의 옛 부산남고등학교와 스페이스 원지까지 세 곳으로 나뉘어요.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9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72일간 이어집니다. 예술감독은 호추니엔이고, 주제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는 릴케의 시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 마지막 구절에서 가져왔어요.
부산비엔날레는 11월 1일에 끝나 이 목록에서 가장 먼저 문을 닫습니다. 광주비엔날레는 11월 15일까지라 두 주쯤 여유가 있어요. 주제와 감독, 전시장 동선 같은 실전 안내는 2026 부산·광주 비엔날레, 뭘 보러 갈까에 자세히 정리해 뒀어요.
날짜로 줄을 세우면 순서가 보입니다
- 9월에 끝난 것
- 고야전은 9월 30일에 막을 내렸습니다. 놓쳤더라도 10월부터는 아래 순서대로 채우면 됩니다.
- 11월 1일 전에
- 부산비엔날레부터 다녀오세요. 광주비엔날레는 11월 15일까지라 두 주쯤 여유가 있어요.
- 10월 이후 서울에서
- 10월 21일에 시작한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를 넣으세요. 리움과 호암은 12월 27일까지라 언제 가도 괜찮습니다.
- 해를 넘겨 1월까지
-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의 《스페인 미술 500년: 빛과 어둠의 연대기》는 2027년 1월 20일까지라, 연말 전후로 넣어도 늦지 않아요. 엘 그레코와 벨라스케스, 고야의 그림을 원화로 볼 수 있습니다.
- 겨울에 여유롭게
-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솔 르윗전은 2027년 2월 28일까지라, 가장 늦게 미뤄도 되는 카드예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서도호전은 2027년 2월 9일까지인데, 12월 18일 이후에 가면 서울박스의 대형 설치까지 함께 볼 수 있습니다.
- 예매와 가격
- 기관마다 다르고 도중에 바뀌기도 합니다. 가기 전에 각 미술관 공식 안내에서 확인하세요.
전시장에서 무엇을 어떻게 볼지가 막막하다면 미술관, 어떻게 봐야 하나요?를, 해설을 끼고 보고 싶다면 도슨트, 어떻게 활용하나요?를 먼저 읽어 두면 하루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여기 적은 일정은 2026년 10월 23일 기준입니다. 관람 시간과 휴관일, 예매 방식은 기관마다 다르고 도중에 바뀌기도 하니 가기 전에 각 미술관 공식 안내를 한 번 확인하세요. 가을은 길고, 전부 볼 필요도 없습니다. 2026년 가을에 딱 한 곳만 고른다면 어디일지, 그 한 줄만 정하고 나서도 충분해요.
자주 묻는 질문
2026년 가을 서울과 근교에서 꼭 봐야 할 전시는 무엇인가요?
날짜가 급한 것부터 고르면 됩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고야전은 9월 30일에 끝났고, 리움미술관의 구정아 개인전과 호암미술관의 아트스펙트럼은 12월 27일까지 열려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서도호 개인전은 2027년 2월 9일까지라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먼저 사라지는 순서대로 채우는 편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고야전은 언제까지 했나요?
2026년 9월 30일까지였습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6월 26일에 시작해 석 달 남짓 열렸어요. 유화 원화 없이 판화와 자료로 꾸린 전시였고, 국내에서 고야를 단독으로 다룬 첫 전시였습니다. 고야라는 화가의 생애와 작품은 고야를 다룬 입문 글에 따로 정리돼 있어요.
전시를 보려면 예약이 필요한가요?
기관마다 다릅니다. 지정 시간 예매제로 운영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현장 구매만 받는 곳도 있고, 같은 미술관이라도 전시에 따라 방식이 달라져요. 예매 방식과 관람료, 휴관일은 방문 전에 해당 미술관 공식 안내에서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서울 밖에도 볼 만한 전시가 있나요?
두 비엔날레가 있어요. 2026부산비엔날레가 8월 29일부터 11월 1일까지, 제16회 광주비엔날레가 9월 5일부터 11월 15일까지 열립니다. 부산은 11월 1일, 광주는 11월 15일에 끝나니 부산부터 먼저 다녀오는 편이 좋아요.
가을 전시를 고르는 요령이 있나요?
끝나는 날짜순으로 줄을 세워 보세요. 곧 문을 닫는 전시를 앞에 놓고, 12월이나 이듬해까지 가는 전시는 뒤로 미루면 됩니다. 하루에 한두 곳으로 제한하는 것도 중요해요. 욕심을 내면 무엇을 봤는지 기억나지 않는 채로 돌아오게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