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어떤 초상 앞에 서면 잠깐 갸웃하게 됩니다. 목이 실제보다 길고, 얼굴은 위아래로 갸름하게 늘어나 있고, 눈은 아몬드처럼 째졌는데 그 안에 눈동자가 없어요. 그런데도 얼굴이 뭉개져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또렷합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그림이에요.
리보르노의 병약한 아이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는 1884년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태어났습니다. 지중해에 면한 항구 도시였어요.
그의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재능이 아니라 병입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결핵을 앓았어요. 이 병은 끝내 낫지 않은 채 평생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훗날 그의 파리 시절을 이야기할 때 술과 약물이 먼저 등장하곤 하는데, 몸을 실제로 무너뜨린 쪽은 오래된 병과 가난이었죠. 보헤미안이라는 말로 뭉뚱그리면 잃어버리는 사실이 여기 있습니다.
1906년, 스물두 살의 모딜리아니는 파리로 갑니다. 처음에는 몽마르트르에 자리를 잡았다가 이후 몽파르나스로 옮겼어요. 그 무렵 이 동네에는 유럽 곳곳에서 몰려든 화가들이 뒤섞여 있었고, 피카소 입문에서 다룬 피카소도 같은 시기 파리에 있었습니다.
다만 모딜리아니는 어느 유파에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입체파도 야수파도 그의 곁에서 한창이었지만, 그는 어떤 선언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평생 거의 한 가지만 그렸어요. 사람이었죠. 초상과 누드, 그것도 대부분 한 사람이 화면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는 그림이었습니다.
돌을 깎던 몇 해
파리에 온 뒤 한동안 그가 붙잡고 있던 것은 붓이 아니었습니다. 1909년 무렵부터 1914년 무렵까지, 모딜리아니는 조각에 몰두했어요.
이 시기에 가까이 지낸 사람이 조각가 콩스탕탱 브랑쿠시입니다. 브랑쿠시는 형태를 최대한 단순하게 깎아 내려가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모딜리아니도 그 곁에서 돌을 다뤘어요. 그가 남긴 것은 대부분 길쭉한 두상 연작입니다. 얼굴은 위아래로 길게 늘어나고, 코는 곧게 내려오고, 눈은 얕은 자국으로만 표시된 경우가 많죠. 아프리카 조각과 고대 조각에서 본 형태가 그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업은 오래 가지 못했어요. 돌을 깎을 때 날리는 가루가 이미 약한 폐에 좋을 리 없었고, 돌값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회화로 돌아옵니다. 조각을 그만둔 셈이지만, 조각이 그의 그림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어요.
돌을 깎는 일이 그림과 어떻게 다른지는 조각·설치·미디어 감상에 정리해 뒀습니다. 빈 화면에 색을 더해 가는 회화와 달리, 조각은 꽉 찬 재료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덜어 내며 형태를 찾아가는 작업이에요.
길어진 목과 비워 둔 눈동자
회화로 돌아온 뒤 모딜리아니의 초상은 조각을 닮아 갑니다. 목은 실제보다 길게 늘어났고, 얼굴은 달걀을 세워 놓은 듯 갸름해졌으며, 눈은 아몬드처럼 째졌어요. 돌에서 찾던 형태를 물감으로 다시 찾은 셈입니다.
가장 자주 이야기되는 것은 눈동자입니다. 그의 초상 가운데는 눈 안이 색 하나로만 메워지고 눈동자가 아예 칠해지지 않은 그림이 적지 않아요. 이유에 대해서는 영혼을 알게 되면 눈동자를 그리겠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눈동자가 없는 얼굴은 어디도 쳐다보지 않게 되고, 그래서 그림 앞에 선 쪽이 대신 그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는 사실이죠.
- 목
- 실제보다 길고 가늘게 늘어나 있습니다. 얼굴을 떠받치는 기둥처럼 보이죠.
- 얼굴
- 위아래로 길쭉한 달걀형이고, 코는 가는 선 하나로 곧게 내려옵니다.
- 눈
- 아몬드처럼 길게 째져 있고, 눈동자가 칠해지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 배경
- 거의 비어 있습니다. 벽 한 면이나 의자 하나로 정리돼 인물만 남죠.
1917년, 생애 단 한 번의 개인전
살아 있는 동안 그의 이름이 크게 알려질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자기 이름을 걸고 연 개인전은 평생 딱 한 번, 1917년 파리의 베르트 베유 화랑에서였어요.
그런데 이 전시는 작품이 아니라 소동으로 기억됩니다. 화랑 진열창에 걸린 누드가 길에서 훤히 보였고, 곧 사람들이 모여들었어요. 경찰이 찾아와 그림을 내리라고 요구했고, 전시는 시작하자마자 그 요구에 응해야 했습니다. 당대의 눈에 그의 누드는 너무 직접적이었던 거예요. 화제가 된 것과 별개로, 팔린 그림은 많지 않았습니다.
눈동자를 늘 비운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같은 해에 그린 두 초상만 나란히 놓아도 한쪽은 눈동자가 없고 다른 한쪽은 있습니다. 그러니 눈동자 없는 얼굴은 그의 습관이라기보다, 그림마다 그가 다르게 내린 결정에 가까웠던 셈이죠.
서른다섯에 멈춘 자리
1917년, 모딜리아니는 미술을 공부하던 잔 에뷔테른을 만납니다. 두 사람은 함께 살았고 이듬해 딸이 태어났어요. 이후 그의 그림에 가장 자주 등장한 사람이 잔이었습니다.
그러나 병은 이미 깊어져 있었어요. 1920년 1월,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결핵성 뇌수막염이었습니다. 서른다섯이었어요.
그리고 이틀 뒤, 만삭이던 잔도 스물한 살에 스스로 생을 놓았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후 여러 번 낭만적으로 각색됐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있던 것은 오래된 병과 가난, 그리고 남겨진 어린 딸이었어요.
결핵은 이 시기 유럽에서 흔하고 치명적인 병이었습니다. 뭉크가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누나를 잃은 것도 같은 병 때문이었죠. 요절한 동시대 초상화가로 자주 나란히 놓이는 에곤 실레도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스물여덟에 세상을 떠났고, 그 짧은 생은 에곤 실레 입문에 따로 적어 뒀어요. 두 사람 다 끝까지 사람만 그렸는데, 실레의 몸이 긴장으로 각져 있다면 모딜리아니의 몸은 고요하게 늘어나 있습니다.
그림값이 화가를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았어요. 팔려도 값은 헐했고, 그는 가난하게 살다 갔습니다.
평가가 뒤집힌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1920년대를 지나며 그의 초상은 20세기 초 파리를 대표하는 얼굴로 자리 잡았고, 값도 함께 올라갔어요.
가장 널리 알려진 숫자는 2015년에 나왔습니다. 그해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누워 있는 나부〉가 약 1억 7,040만 달러에 낙찰됐어요. 같은 2015년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이 약 1억 7,940만 달러를 기록한 데 이은 금액이었습니다. 경매 최고가가 어떤 자리에서 다시 쓰여 왔는지는 가장 비싼 그림에 계보로 정리돼 있어요.
모딜리아니의 초상 앞에 서면 두 가지를 함께 보게 됩니다. 하나는 돌을 깎다 그림으로 돌아온 사람이 찾아낸 형태고, 다른 하나는 그 형태를 알아보는 데 세상이 얼마나 오래 걸렸는가 하는 사실이에요. 다음에 어디선가 길게 늘어난 목과 비워 둔 눈동자를 만나거든, 그것이 그리다 만 얼굴이 아니라 끝까지 밀어붙인 형태라는 걸 함께 떠올려 보세요.
자주 묻는 질문
모딜리아니는 왜 유명한가요?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초상 때문입니다. 목은 길게 늘어나고 얼굴은 갸름하며 눈은 아몬드처럼 째진 형태가 그의 서명처럼 굳어졌어요. 여기에 생전에는 거의 팔리지 않다가 사후에 평가가 뒤집힌 이력이 더해지면서, 20세기 초 파리를 대표하는 이름이 됐죠.
모딜리아니는 왜 목을 길게 그렸나요?
1909년 무렵부터 몇 해 동안 조각에 몰두한 경험이 배경으로 자주 꼽힙니다. 돌을 깎으며 만들던 길쭉한 두상의 형태가 회화로 돌아온 뒤에도 남았다는 설명이죠. 닮게 그리기보다 형태를 다듬는 쪽을 택한 결과로 보면 이해가 쉬워요.
모딜리아니 그림에는 왜 눈동자가 없나요?
눈동자를 칠하지 않은 초상이 여럿 남아 있지만, 이유를 본인이 분명히 밝힌 기록은 없어요. 영혼을 알게 되면 눈동자를 그리겠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출처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초상이 그런 것은 아니어서, 눈동자를 또렷하게 그린 그림도 나란히 전해지죠.
잔 에뷔테른은 누구인가요?
1917년에 모딜리아니를 만나 함께 산 미술 학생이자, 그의 초상에 가장 자주 등장한 사람입니다. 1920년 1월 모딜리아니가 세상을 떠나고 이틀 뒤 만삭이던 잔도 스물한 살에 스스로 생을 놓았어요. 두 사람 이야기는 자주 낭만적으로 각색되지만, 실제 배경에는 오래된 병과 가난이 있었죠.
모딜리아니 작품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유럽과 북미의 여러 미술관이 나눠 소장하고 있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1919년에 그린 〈잔 에뷔테른〉이,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에는 1917년 초상 〈샤임 수틴〉이 있어요. 국내에서는 해외 소장품을 빌려 오는 기획전에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