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입을 벌린 사람, 그 뒤로 핏빛으로 일렁이는 하늘. 이모지로, 영화 포스터로, 수없이 많은 패러디로 한 번쯤은 마주친 장면이에요.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입니다. 그림은 이렇게 온 세상이 외우다시피 하는데, 정작 그것을 그린 뭉크라는 사람은 의외로 낯섭니다. 비명 하나로 기억되는 이 화가가 평생 무엇을 그리려 했는지, 그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볼게요.
검은 천사들의 유년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는 1863년 노르웨이에서 태어나 194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든 해를 넘긴 긴 생애였지만, 그 출발점에는 짙은 그늘이 있었어요.
다섯 살 때 그는 어머니를 결핵으로 잃습니다. 소년 시절에는 누나 소피에마저 같은 병으로 떠나보냈어요. 어린 나이에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을 병으로 잃은 경험은 평생 그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았습니다. 뭉크 자신도 몸이 약했고, 죽음은 늘 곁에 있는 무엇이었죠.
훗날 그는 자신의 유년을 이렇게 돌아봤어요.
그에게 그림은 예쁜 것을 재현하는 일이 아니었어요. 마음을 짓누르는 불안과 슬픔,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을 화폭으로 끌어내는 일이었습니다. 뭉크의 그림이 유독 어둡고 떨리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검은 천사들부터 떠올리면 됩니다.
베를린을 뒤흔든 일주일
1892년, 뭉크는 베를린미술가협회의 초청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전시를 열게 됩니다. 노르웨이의 젊은 화가에게는 큰 무대였죠. 그런데 걸린 그림들이 문제였어요. 형태는 뭉개지고 색은 거칠었으며, 무엇보다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안과 우울이 당시 관객에게는 너무 낯설고 불편했습니다.
전시장은 곧 아수라장이 됐어요. 그림이 미완성이다, 협회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비난이 빗발쳤고, 협회는 회원 투표까지 벌인 끝에 전시를 연 지 일주일 만에 문을 닫아 버립니다. 초청해 놓고 내쫓은 셈이었죠.
그런데 이 소동이 뜻밖의 결과를 낳았어요. 표현의 자유가 이렇게 짓밟혀도 되느냐며 협회 안의 젊은 화가들이 반발했고, 이들이 협회를 뛰쳐나와 베를린 분리파(Berlin Secession)를 세우는 계기가 됩니다. 스캔들은 뭉크에게 상처가 아니라 명성을 안겼어요. 하루아침에 그의 이름은 독일 미술계가 주목하는 화제가 됐고, 그는 이후 여러 해를 베를린에 머물며 작업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유럽 곳곳에서 낡은 아카데미에 등을 돌린 젊은 예술가들이 '분리파'라는 이름으로 뭉치고 있었어요. 몇 해 뒤 빈에서 클림트가 세운 빈 분리파도 그 흐름 위에 있었습니다. 세기말 유럽은 여기저기서 판을 새로 짜는 중이었죠.
절규, 자연을 관통한 비명
이제 그를 세계적인 이름으로 만든 그림, 〈절규〉로 가 봅시다. 노르웨이어 원제는 'Skrik', 비명이라는 뜻이에요.
이 그림은 뭉크 자신이 겪은 어느 순간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두 친구와 함께 해 질 녘 길을 걷고 있었어요. 문득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그는 걸음을 멈춘 채 극심한 불안에 사로잡힙니다. 훗날 그는 그때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한 비명"을 들었다고 적었어요. 그러니까 〈절규〉의 주인공은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방에서 밀려오는 그 비명을 견디지 못해 귀를 막은 사람입니다.
이 그림이 왜 그토록 강렬한지는 구도를 뜯어보면 보입니다. 하늘과 강은 물결처럼 굽이치는데,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 난간만 곧게 뻗어 있어요. 흔들리는 곡선과 단단한 직선이 부딪치고, 그 긴장 속에서 우리 시선은 결국 귀를 막은 얼굴에 가서 멈춥니다.
〈절규〉는 사실 한 점이 아니에요. 뭉크는 같은 이미지를 여러 차례 다시 만들었습니다. 1893년의 회화와 파스텔, 1895년의 파스텔, 1910년의 회화, 그리고 석판화까지 모두 다섯 버전이 전해지죠. 회화와 파스텔은 대부분 오슬로의 미술관들이 소장하고 있고, 그중 1895년 파스텔 한 점만이 유일하게 개인의 손에 있었어요.
바로 그 개인 소장본이 2012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 나옵니다. 낙찰가는 1억 1,990만 달러. 당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였어요. 온 자연의 비명을 담은 그림 한 점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경매 낙찰작이 된 겁니다. 그림값이 이렇게 치솟는 원리는 작품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나요에서, 경매장이 실제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경매 입찰 가이드에서 다뤘어요.
명성이 큰 만큼 수난도 따랐습니다. 1893년 회화는 1994년 오슬로 국립미술관에서 도난당했다가 회수됐고, 1910년 회화는 2004년 뭉크미술관에서 〈마돈나〉와 함께 무장 강도에게 빼앗겼다가 2006년에 되찾았어요.
생의 프리즈, 사랑과 불안과 죽음
〈절규〉는 홀로 떨어진 걸작이 아니라 더 큰 기획의 한 조각이었어요. 뭉크는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감정을 하나의 연작으로 묶으려 했고, 여기에 〈생의 프리즈(The Frieze of Lif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랑에서 시작해 불안을 지나 죽음에 이르는, 감정의 지도 같은 기획이었죠.
〈절규〉는 그 가운데 '불안'의 자리에 놓입니다. 성모를 관능적으로 그린 〈마돈나〉, 붉은 머리 여인이 남자에게 몸을 기댄 〈뱀파이어〉, 두려움에 굳은 얼굴들이 늘어선 〈불안〉이 모두 이 연작의 식구예요. 1902년 뭉크는 베를린 분리파 전시에서 이 연작을 스물두 점 규모로 한자리에 걸어, 한 사람의 일생이 겪는 감정의 파고를 벽면 전체로 펼쳐 보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마음이 겪는 세계를 그린다는 점에서, 뭉크는 반 고흐와 나란히 놓입니다. 반 고흐가 자기 안의 열정과 고통을 소용돌이치는 붓질로 쏟아냈다면, 뭉크는 불안과 상실을 물결치는 선과 색으로 옮겼어요. 두 사람이 각자 연 이 길, 곧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을 그리는 흐름이 20세기 초 표현주의로 이어집니다. 표현주의가 미술사에서 어디쯤 놓이는지는 미술 사조, 5분 만에 따라잡기에서 큰 지도로 짚어볼 수 있어요.
요양 이후, 에켈뤼의 만년
쉼 없이 불안을 그리던 뭉크에게도 한계가 왔어요. 오랜 음주와 신경 쇠약이 겹쳐, 1908년 그는 코펜하겐의 한 병원에 들어가 이듬해까지 요양합니다. 뜻밖에도 이 무너짐이 전환점이 됐어요. 건강을 어느 정도 추스른 뒤 노르웨이로 돌아온 그는, 오슬로 근교의 에켈뤼(Ekely)에 자리를 잡고 남은 삶을 비교적 평온하게 보냅니다.
만년의 화면은 한결 밝아졌어요. 젊은 날의 그림을 짓누르던 죽음의 그림자 대신, 농장과 들판의 풍경, 작업실의 모델, 그리고 늙어 가는 자신을 담담히 응시한 자화상이 그 자리를 채웁니다. 여전히 물결치는 선과 강한 색은 남았지만, 이제 그것은 공포가 아니라 삶 쪽을 향하고 있었죠.
1944년 세상을 떠나며 뭉크는 자신이 갖고 있던 작품 대부분을 오슬로시에 기증했습니다. 평생 팔지 않고 곁에 두었던 회화와 판화, 드로잉이 통째로 도시의 품에 안겼고, 이것이 오늘날 뭉크미술관의 토대가 됐어요.
병과 죽음이 지킨 요람에서 시작해, 베를린을 뒤흔든 스캔들과 온 자연을 관통한 비명을 지나, 에켈뤼의 고요한 만년에 이르기까지. 뭉크의 한평생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 본 풍경의 기록이었어요. 다음에 어디선가 〈절규〉의 일렁이는 하늘을 다시 만나거든, 그것이 그림 속 흔한 노을이 아니라 한 사람이 평생 견뎌 온 불안의 빛깔이라는 걸 함께 떠올려 보세요.
자주 묻는 질문
뭉크는 왜 유명한가요?
온 세상이 아는 그림 〈절규〉를 그린 노르웨이 화가예요. 눈에 보이는 풍경 대신 마음속 불안과 공포를 물결치는 선과 강렬한 색으로 그려, 20세기 미술의 큰 흐름인 표현주의를 앞장서 연 인물로 꼽힙니다. 병과 죽음이 드리운 자신의 삶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 화가죠.
〈절규〉는 무엇을 그린 그림인가요?
뭉크가 해 질 녘 산책 중에 겪은 순간을 그린 그림입니다.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던 그때, 그는 "자연을 관통하는 거대한 비명"을 들었다고 회고했어요. 그림 속 인물은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방에서 밀려오는 그 비명을 견디지 못해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사람이에요.
〈절규〉는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절규〉는 한 점이 아니라 회화와 파스텔, 석판화로 모두 다섯 버전이 전해집니다. 대부분은 노르웨이 오슬로의 국립미술관과 뭉크미술관이 나눠 소장하고 있어요. 그중 1895년 파스텔 한 점만 개인이 갖고 있었는데, 2012년 경매에 나와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절규〉가 도난당한 적이 있다던데 사실인가요?
네, 두 번 있었어요. 1893년 회화는 1994년 오슬로 국립미술관에서 도난당했다가 회수됐고, 1910년 회화는 2004년 뭉크미술관에서 〈마돈나〉와 함께 무장 강도에게 빼앗겼다가 2006년에 되찾았습니다. 워낙 유명한 그림이라 그만큼 수난도 컸던 셈이죠.
뭉크 그림은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요?
눈에 보이는 대상을 옮긴 그림이 아니라, 그 대상 앞에서 뭉크가 느낀 감정을 옮긴 그림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아요. 하늘이 왜 붉게 일렁이는지, 인물이 왜 뭉개져 있는지를 사실이 아니라 감정의 표현으로 읽어 보세요. 색과 곡선이 전하는 불안의 온도에 집중하면 그림이 다르게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