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서든 달력에서든, 굵은 선으로 그린 황소 한 마리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거예요. 뿔을 치켜들고 고개를 튼 채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듯한 그 소 말입니다. 한국 근대미술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미지 가운데 하나죠.

그림은 이렇게 익숙한데, 정작 그린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까지 아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이에요. 그가 남긴 그림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캔버스가 아니라 담뱃갑에서 꺼낸 은박지 위에 있습니다.

평원의 부잣집 아들, 화가가 되기까지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넉넉했어요. 뒷날의 가난을 생각하면 의외지만, 그는 부족할 것 없는 유년을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림에 눈을 뜬 곳은 오산학교였어요. 이곳에서 미술을 만난 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합니다. 그 시절 조선의 화가 지망생에게 도쿄 유학은 새로운 미술을 접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죠. 비슷한 시기에 김환기유영국도 도쿄에서 추상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유학 시절 그는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광복 무렵 원산에서 결혼했고, 마사코는 이남덕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게 돼요. 이때 이룬 가정이 이후 그의 그림이 줄곧 향하게 될 곳이 됩니다.

서귀포, 가장 따뜻한 가난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그의 삶은 뿌리째 흔들립니다. 이중섭은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고, 부산을 거쳐 제주 서귀포에 닿았어요.

서귀포에서 네 식구가 지낸 곳은 단칸방이었습니다. 먹을 것도 그릴 것도 넉넉하지 않았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가 남긴 그림 가운데 가장 밝고 따뜻한 화면들이 바로 이 시기에 나옵니다. 바닷가에서 게를 잡는 아이들, 서로 엉킨 채 웃는 벌거벗은 아이들, 물결과 새와 물고기가 한데 뒤섞인 장면이요.

가장 가난했던 시절에 가장 따뜻한 그림이 나왔다는 사실은, 그가 무엇을 그리려 했는지를 그대로 알려 줍니다.

피란살이의 고단함을 화면에 옮기는 대신 그는 가족이 함께 있는 장면을 그렸어요. 서귀포에 머문 기간이 길지 않았는데도 그의 대표적인 시기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1952년, 가족이 바다를 건너가다

피란살이는 오래 버틸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1952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아내와 두 아들은 일본으로 떠납니다. 처가가 있는 곳이었어요. 잠시 떨어져 있다가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만나기로 한 이별이었습니다.

그 뒤로 이중섭은 통영과 서울, 대구를 옮겨 다니며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냥 편지가 아니라 그림이 함께 든 편지였죠. 아이들에게 보내는 엽서에는 아빠와 두 아들이 물고기를 타고 노는 장면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다시 함께 살 날의 풍경이 담겼습니다.

편지 속 그림에는 그가 겪고 있던 궁핍이 거의 나오지 않아요. 대신 언제나 네 식구가 함께 있습니다.

은지화, 가난이 만든 발명

이 무렵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재료였습니다. 캔버스도 물감도 종이도 살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가 집어 든 것이 담뱃갑 속 은박지였습니다. 이렇게 은박지에 새긴 그림을 은지화라고 불러요.

은지화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① 담뱃갑 속 은박지를 꺼내 ② 반듯하게 펴서 종이 대신 삼고 ③ 철필로 눌러 선을 새기고 ④ 물감을 문질러 파인 자리에만 남긴다
담뱃갑에서 꺼낸 은박지를 펴서 철필로 눌러 새기고, 그 위에 물감을 문질렀다 닦아 내면 파인 자리에만 색이 남습니다. 재료를 살 수 없어 택한 방법이 결국 그만의 기법이 됐어요.

크기는 손바닥만 하고 재료는 버려질 것이었지만, 결과는 그의 다른 어떤 작업과도 닮지 않은 그림이었습니다. 궁핍이 강요한 선택이 그를 알아보게 하는 표지가 된 셈이죠.

이 작은 그림들에는 뜻밖의 뒷이야기가 붙어 있어요. 한국에 와 있던 미국인 맥타가트가 은지화 세 점을 사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기증했고, 미술관은 1956년 이를 소장품으로 받아들입니다. 한국 작가의 작품이 MoMA에 들어간 첫 사례였어요. 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그림이 세계에서 가장 이름난 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이 된 겁니다.

소, 그가 자신을 그린 방법

이중섭 하면 역시 입니다. 〈흰 소〉와 〈황소〉를 비롯해, 그는 소를 되풀이해 그렸어요.

같은 형태, 선이 달라지면 선을 굵게 힘이 실린 자리 가는 선 형태를 알려 준다 굵은 선 힘이 먼저 닿는다
선의 굵기가 무엇을 바꾸는지 보기 위한 도식이에요(실제 작품이 아닙니다). 가늘고 고른 선은 형태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려 주고, 굵고 강약이 있는 선은 형태보다 힘을 먼저 전합니다. 이중섭의 소가 사납게 느껴지는 이유는 소의 표정이 아니라 선의 굵기에 있어요.

그의 소가 특별한 것은 소를 닮게 그려서가 아닙니다. 굵고 힘찬 윤곽선 때문이에요. 붓이 한 번에 지나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선의 굵기와 속도가 소의 근육보다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소를 두고 사람들은 오래 두 가지로 읽어 왔어요. 하나는 고단한 시대를 견디는 우리 자신의 표상이라는 읽기고, 다른 하나는 화가 자신의 초상이라는 읽기입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떠돌던 사람이 그린, 뿔을 세우고 버티는 짐승이니까요.

이중섭 그림, 이렇게 보기
선의 굵기
형태보다 선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지 보세요. 그의 화면에서 감정을 나르는 것은 색이 아니라 선입니다.
되풀이되는 식구
어른 둘과 아이 둘. 이 네 사람이 한 화면에 몇 번이나 등장하는지 세어 보면 그림이 향한 곳이 보여요.
재료의 크기
은지화는 손바닥만 합니다. 화면이 작을수록 그가 어떤 형편에 있었는지가 함께 읽히죠.

같은 시대를 산 김환기와 유영국이 형상을 지우고 추상으로 걸어갈 때, 이중섭은 반대쪽으로 갔습니다. 소와 아이들, 게와 물고기처럼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을 끝까지 붙들었어요. 한국 근대미술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의 화면이 보여 줍니다. 서민의 일상을 거친 질감으로 옮긴 박수근도 같은 시대의 또 다른 길이었죠.

1955년의 전시, 그리고 남은 것들

1955년, 이중섭은 서울에서 개인전을 엽니다. 반응은 컸어요. 그의 이름이 화단에 또렷하게 새겨진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림값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어요. 작품은 나갔는데 돈은 돌아오지 않는 일이 되풀이됐고, 가족을 다시 데려오겠다는 계획도 함께 멀어졌습니다. 그림값이 시장에서 어떻게 매겨지고 움직이는지는 작품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나요에서 따로 다뤘어요.

이듬해인 1956년, 이중섭은 병과 영양실조 속에 홀로 세상을 떠납니다. 마흔이었어요. 가족과 다시 만나는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남긴 그림은 그 뒤로도 계속 자리를 옮겼어요.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이중섭의 작품 약 80점이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왔고, 그중에는 〈황소〉도 있습니다. 이 기증이 무엇이었고 어디서 볼 수 있는지는 이건희 컬렉션에 정리해 뒀어요.

네 식구가 함께 지낸 제주 서귀포에는 이중섭미술관이 있고, 그 앞길은 이중섭거리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단칸방 한 칸이 미술관이 된 셈이죠.

굵은 선의 소를 어디선가 다시 만나거든, 그 선이 얼마나 급하게 그어졌는지를 한번 보세요. 캔버스를 살 수 없어 담뱃갑을 뜯던 사람이, 그래도 매일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이중섭은 왜 유명한가요?

굵고 힘찬 윤곽선의 소 그림으로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게 된 화가입니다.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1956년 마흔에 세상을 떠났어요.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가족과 아이들, 소를 되풀이해 그렸고, 담뱃갑 은박지에 새긴 은지화라는 독특한 작업을 남겼습니다.

이중섭은 왜 소를 그렸나요?

그의 소는 닮게 그린 동물이 아니라 굵은 선의 힘으로 읽히는 형상이에요. 사람들은 이 소를 고단한 시대를 견디는 우리 자신의 표상으로도, 화가 자신의 초상으로도 읽어 왔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떠돌던 사람이 뿔을 세우고 버티는 짐승을 거듭 그렸다는 점이 그 읽기의 바탕이 됐죠.

은지화가 뭔가요?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린 그림을 말합니다. 은박지를 펴서 철필처럼 뾰족한 것으로 눌러 선을 새기고, 그 위에 물감을 문질렀다 닦아 내면 파인 자리에만 색이 남아요. 캔버스도 물감도 살 수 없던 형편에서 나온 방법이지만, 결국 이중섭을 알아보게 하는 표지가 됐습니다.

이중섭 그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약 80점이 국립현대미술관에 들어왔고 〈황소〉도 그중 하나예요. 상설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 소장품전이나 특별전에서 번갈아 공개되니 일정을 확인하고 가는 편이 좋습니다. 그가 피란 시절을 보낸 제주 서귀포에는 이중섭미술관과 이중섭거리가 있어요.

이중섭의 가족은 어떻게 됐나요?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야마모토 마사코와 광복 무렵 원산에서 결혼했고, 마사코는 이남덕이라는 한국 이름을 썼습니다. 1952년 생활고로 아내와 두 아들이 일본으로 떠났어요. 이중섭은 통영과 서울, 대구를 옮겨 다니며 그림을 넣은 편지와 엽서를 가족에게 보냈지만 다시 함께 살지는 못했죠.

← 마티스 입문 르누아르 입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