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맞잡고 둥글게 도는 붉은 사람들, 색종이를 오려 붙인 듯 단순한 파랑과 초록의 형태들. 카페 벽에서, 책 표지에서, 미술관 기념품 가게에서 한 번쯤 스쳤을 그림이에요. 앙리 마티스의 작품입니다. 색이 워낙 밝고 형태가 시원해서 편하게 보고 지나치기 쉬운데, 사실 이 그림들은 서양 미술이 수백 년 동안 지켜 온 규칙 하나를 정면으로 깨뜨린 결과물이에요. 그가 평생 붙들고 있던 질문을 알고 나면, 그 밝은 색들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스무 살, 병상에서 만난 물감 상자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는 1869년 프랑스 북부에서 태어나 1954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든다섯 해의 생애였어요.
의외인 건 출발점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화가를 꿈꾼 사람이 아니었어요. 법률 사무소에서 서류를 다루던 사무원이었죠. 스무 살 무렵 맹장염으로 자리에 눕게 되는데, 지루한 회복기를 견디라고 어머니가 물감 상자를 사다 줍니다. 심심풀이로 시작한 그 그림에서 그는 자기 삶을 통째로 바꿀 무언가를 발견했어요. 결국 사무소를 그만두고 파리로 그림을 배우러 떠납니다.
늦은 출발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에요. 스물일곱에 처음 붓을 든 반 고흐도 그랬죠. 다만 마티스가 화가가 되기로 정해진 길을 밟은 사람이 아니라, 우연히 만난 즐거움을 좇아 뒤늦게 방향을 튼 사람이었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그림이 그에게 처음부터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었다는 뜻이니까요.
야수라 불린 1905년
1905년 가을, 파리에서 열린 살롱 도톤(Salon d'Automne, 가을 살롱)에 마티스와 드랭을 비롯한 젊은 화가들의 그림이 걸립니다. 전시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당황했어요. 화면마다 원색이 날것 그대로 부딪치고 있었거든요. 비평가 루이 보셀(Louis Vauxcelles)은 이 방을 두고 "야수(Fauves)들 같다"고 평했고, 조롱에 가까웠던 이 한마디가 그대로 사조의 이름이 됩니다. 야수파(Fauvism), 우리말로 야수주의라 부르는 흐름이에요.
논란의 한복판에 있던 그림이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1905)입니다. 모델은 그의 아내 아멜리였어요. 그런데 얼굴에 초록과 보라가 칠해져 있었습니다. 그늘진 살빛도 아니고 반사된 색도 아닌, 대놓고 초록인 얼굴이었죠. 관객이 받은 충격은 그림이 예쁘지 않아서가 아니었어요. 색이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을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야수파가 한 일입니다. 나무를 빨갛게, 얼굴을 초록으로 칠해도 상관없다는 것. 색이 대상을 닮아야 한다는 오래된 의무에서 풀려나, 색 자체가 화면의 감정과 구조를 만드는 재료가 됐어요. 색의 해방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옵니다. 야수파라는 이름으로 묶인 시간은 1905년부터 1910년 무렵까지로 짧았지만, 이 선언은 20세기 미술 전체가 딛고 선 발판이 됐죠. 이 흐름이 미술사 어디쯤에 놓이는지는 미술 사조, 5분 만에 따라잡기에서 지도처럼 볼 수 있어요.
좋은 안락의자 같은 그림
색을 풀어놓은 다음이 더 중요합니다. 마티스는 그 자유로 무엇을 하려 했을까요. 1908년에 쓴 '화가의 노트'에서 그는 자신이 바라는 예술을 이야기했어요. 균형 잡히고 맑은 그림, 보는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그림. 하루의 일에 지친 사람에게 "좋은 안락의자" 같은 것이면 좋겠다고 적었습니다.
이 한마디가 마티스의 자리를 정확히 알려 줍니다. 비슷한 시기 뭉크의 화면에서는 불안이 하늘까지 일렁이고 있었고, 반 고흐의 화면에서는 열기가 붓자국마다 타올랐어요. 감정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것이 현대미술의 큰 방향 하나였다면, 마티스는 정확히 반대편을 골랐습니다. 그는 색으로 기쁨과 안정을 만들려 했어요.
주의할 건 이것이 '쉬운 그림'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에요. 보는 사람이 편안하려면 화면 안의 모든 색이 서로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색면 하나의 크기와 위치를 두고 마티스가 끝없이 고쳐 나간 이유죠. 편안함은 그가 힘겹게 도달하려 한 결과였지, 손쉬운 출발점이 아니었습니다.
〈춤〉(1909~1910)이 그 결과를 잘 보여 줘요. 손을 맞잡은 인물들이 둥글게 돌고 있고, 배경에는 넓은 색면 몇 개뿐입니다. 근육도 옷 주름도 표정도 없어요. 그런데 화면에서 몸의 리듬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덜어낼 수 있는 것을 다 덜어낸 자리에 색과 움직임만 남긴 셈이죠.
가위로 그린 만년
1941년, 마티스는 큰 수술을 받습니다. 이후 그는 예전처럼 이젤 앞에 오래 서 있을 수 없게 됐어요. 일흔을 넘긴 몸으로 침대와 휠체어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붓을 놓아야 할 상황이었죠.
여기서 그는 뜻밖의 방법을 찾아냅니다. 미리 색을 칠해 둔 종이를 가위로 오려 내고, 그 조각들을 벽에 배치해 붙이는 작업이었어요. 컷아웃(cut-out)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어쩔 수 없이 택한 대체품이 아니었습니다. 붓으로 그릴 때는 형태를 그린 다음 그 안에 색을 채우지만, 가위는 형태와 색을 한 동작으로 만들어 내거든요. 평생 씨름해 온 데생과 색채의 문제를, 그는 노년에 이르러 가위 하나로 통과해 버린 셈이에요.
컷아웃으로 만든 화집 〈재즈〉가 1947년에 나왔고, 색종이 조각들이 느슨한 나선을 그리며 도는 대형 컷아웃 〈달팽이〉는 1953년 작품입니다. 그리고 만년의 결정판은 남프랑스 방스의 로사리오 예배당(1948~1951)이었어요. 그는 스테인드글라스부터 벽화, 사제가 입는 제의까지 이 작은 예배당의 모든 것을 직접 설계했습니다. 빛이 유리를 통과하며 흰 벽에 색을 뿌리도록 계산한 공간이었죠. 마티스 자신이 이 예배당을 스스로의 걸작으로 꼽았어요.
붓에서 가위로, 캔버스에서 건물로. 만년의 마티스는 회화라는 틀 자체를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미술이 평면 바깥으로 넓어지는 흐름은 조각·설치·미디어아트, 어떻게 볼까요에서 이어 볼 수 있어요.
낯선 색이 편안해지는 순간
마티스를 처음 볼 때 가장 흔한 반응은 "이게 왜 대단하지?"입니다. 얼굴은 대충 그린 것 같고, 형태는 단순하고, 색은 그냥 밝아 보이니까요. 그럴 때 보는 순서를 한 번 바꿔 보세요.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보려 애쓰는 대신, 어떤 색이 어떤 색 옆에 놓여 있는지를 먼저 봅니다. 빨강 옆의 초록, 파랑 옆의 주황. 그 부딪침이 만드는 온도와 진동이 마티스가 진짜로 그린 것이거든요.
낯선 그림 앞에서 자꾸 정답을 찾게 되는 이유는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에 따로 정리해 뒀어요. 마티스는 그 낯섦이 불편이 아니라 편안함으로 바뀌는 지점을 평생 찾아다닌 화가였습니다.
병상에서 받은 물감 상자로 시작해, 야수라는 이름을 얻고, 지친 사람을 쉬게 하는 그림을 지향하다가, 붓을 들 수 없게 되자 가위를 든 사람. 마티스의 한평생은 색을 어디까지 놓아줄 수 있는지 시험한 시간이었어요. 다음에 초록 얼굴이나 빨간 나무를 만나거든 틀린 색이라 여기고 지나치지 말고 잠깐 서 보세요. 그 색이 왜 하필 거기 있는지 묻는 순간, 그림은 설명을 멈추고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마티스는 왜 유명한가요?
색을 현실 묘사에서 풀어놓은 화가로 꼽히기 때문이에요. 1905년 파리 살롱 도톤에 걸린 그의 강렬한 그림들이 야수파라는 이름을 낳았고, 얼굴을 초록으로 칠해도 된다는 이 선언이 20세기 미술의 출발점 하나가 됐습니다. 만년에 가위로 색종이를 오려 붙인 컷아웃도 그의 대표적인 성취입니다.
야수파는 무슨 뜻인가요?
1905년 파리 살롱 도톤에서 비평가 루이 보셀이 마티스와 드랭의 그림을 보고 "야수(Fauves)들 같다"고 평한 데서 붙은 이름입니다. 조롱에 가까웠던 한마디가 그대로 사조의 이름이 됐어요. 야수주의라고도 하며, 대략 1905년부터 1910년까지의 짧은 흐름을 가리켜요.
마티스는 왜 얼굴을 초록색으로 칠했나요?
색이 대상을 설명해야 한다는 오래된 규칙을 깨기 위해서였어요. 〈모자를 쓴 여인〉(1905)에서 그는 아내 아멜리의 얼굴에 초록과 보라를 올렸는데, 실제로 그렇게 보여서가 아니라 화면 전체의 색이 서로 부딪치며 살아나도록 고른 색이었습니다. 색을 대상에서 떼어낸 것이죠.
컷아웃(가위로 그린 그림)이 뭔가요?
미리 색을 칠해 둔 종이를 가위로 오려 내 화면에 붙이는 작업입니다. 1941년 큰 수술 뒤 거동이 어려워진 마티스가 침대와 휠체어에서 찾아낸 방법이에요. 붓은 형태를 그린 뒤 색을 채우지만, 가위는 형태와 색을 한 동작으로 만들어 냅니다. 화집 〈재즈〉와 대형 작품 〈달팽이〉가 대표적인 결과물입니다.
마티스 그림은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요?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보려 애쓰기보다, 어떤 색이 어떤 색 옆에 놓여 있는지를 먼저 보면 좋아요. 빨강 옆의 초록처럼 색끼리 부딪치며 만드는 온도와 리듬이 그가 그린 진짜 대상이거든요. 형태가 단순한 것도 색이 먼저 보이도록 자리를 비워 준 결과라고 생각하고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