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어떤 화면 앞에 서면 눈이 갈 곳을 잃습니다. 빨강과 파랑이 서로를 밀치고, 검은 선이 화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고, 알아볼 만한 형태는 어디에도 없어요.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림입니다. 이런 그림 앞에서 우리는 대개 눈을 더 크게 뜨고 무엇이 그려졌는지 찾으려 하죠. 그런데 정작 이 화면을 만든 사람은 눈보다 귀에 가까운 감각으로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서른 살의 법학자, 그림 앞에서 길을 잃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1866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944년 파리 근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흔여덟 해의 생애였어요.
출발점이 남다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화가를 준비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모스크바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했고, 학자로서 앞길이 열려 있던 법학자였습니다. 그림은 오래도록 곁에 두고 아껴 온 것이었을 뿐이죠.
방향이 바뀐 계기로 자주 이야기되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시에서 그는 모네의 〈건초더미〉를 만났어요. 그런데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도록을 보고서야 건초더미인 줄 알았다고 전해져요. 당황스러운 경험이었을 텐데, 정작 그의 마음에 남은 건 다른 쪽이었습니다. 무엇을 그렸는지 몰라보고도 그림이 자기를 붙들었다는 사실이요.
그리고 1896년, 서른 살의 그는 안정된 자리를 정리하고 그림을 배우러 뮌헨으로 떠납니다. 스무 살 청년이 취미를 좇아 방향을 튼 것과는 사정이 달랐어요. 그가 내려놓은 건 이미 궤도에 오른 학자의 앞길이었으니까요. 그림이 꼭 무언가를 닮아야 하는가. 평생 이 질문을 붙들게 될 사람의 출발점치고는 꽤 늦고 꽤 단호한 걸음이었어요.
눈으로 듣는 그림
칸딘스키를 이해하는 열쇠는 음악입니다. 그는 색과 소리를 따로 떼어 지각하지 않았어요. 색을 들었다고 전해질 만큼, 색마다 다른 높이와 무게의 소리가 있다고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림 제목도 자연스레 음악에서 왔습니다. 즉흥(Improvisation)은 연주자가 악보 없이 그 자리에서 만들어 내는 음악을, 구성(Composition)은 여러 성부를 오래 다듬어 짜 올린 곡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는 이 말들을 그대로 그림 제목으로 가져왔습니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려 주는 제목을 버리고, 화면이 어떻게 울리는지를 알려 주는 제목을 고른 셈이죠.
그림 제목을 먼저 읽는 습관이 칸딘스키 앞에서 특히 쓸모 있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즉흥이라 적혀 있으면 즉각 터져 나온 화면으로, 구성이라 적혀 있으면 오래 짜 맞춘 화면으로 보게 되니까요. 제목이 곧 감상 속도를 알려 주는 표지판인 셈입니다.
대상이 사라진 화면
1911년, 뮌헨에서 그는 화가 프란츠 마르크와 함께 청기사파(Der Blaue Reiter)를 결성합니다. 같은 해에 책도 한 권 냈어요.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입니다. 요지는 분명했습니다. 그림이 무언가를 닮지 않아도, 색과 형태만으로 사람의 정신을 울릴 수 있다는 것.
말로만 그친 선언이 아니었어요. 1910년대 초 그의 화면에서는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이 빠르게 지워집니다. 산도 말도 사람도 형태를 잃고 색과 선의 덩어리로 풀어졌죠. 대상이 사라진 회화의 문을 처음 열어젖힌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가 꼽히는 이유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조심해야 해요. 칸딘스키를 최초의 추상화가로 못 박는 설명을 종종 만나는데, 누가 언제 처음 추상에 도달했는지는 미술사에서도 여전히 의견이 갈립니다. 비슷한 시기에 여러 화가가 각자의 경로로 대상을 지워 나갔거든요. 최초라는 왕관보다는 그 문을 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는 자리가 더 정확합니다.
그 시기의 대표작이 〈구성 7〉(1913)입니다. 격렬한 색과 곡선이 화면 전체에서 뒤엉키는 대작으로,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요.
이런 화면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는 추상화 감상법에 다섯 가지로 정리돼 있고, 대상이 사라진 그림이 왜 이토록 낯설게 느껴지는지는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원과 선의 시절, 그리고 마지막
1920년대에 들어서면 그의 화면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시기예요. 소용돌이치던 곡선이 잦아들고 원과 직선과 각진 도형이 화면을 정돈하기 시작합니다. 가르치는 자리에 서면 자기가 하는 일을 설명할 언어가 필요해지는데, 그 정리벽이 화면에도 그대로 옮겨 온 셈이죠.
이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나치가 바우하우스를 폐쇄했고, 칸딘스키의 그림에는 퇴폐미술이라는 낙인이 찍혔어요. 그는 프랑스로 옮겨 갔고 194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파리 근교에서 작업을 계속합니다. 이 마지막 시기의 화면에서는 기하학의 각이 다시 누그러지고, 어딘가 생물을 닮은 부드러운 형태들이 조용히 떠다녀요.
그가 연 문 너머로
칸딘스키가 연 문 너머로 20세기 미술의 여러 갈래가 지나갔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김환기가 달항아리와 산의 형상까지 지우고 점만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앞 세대 서양 화가들이 대상을 그리지 않아도 된다는 길을 먼저 터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흐름이 미술사 지도의 어디쯤 놓이는지는 미술 사조, 5분 만에 따라잡기에서 한눈에 볼 수 있어요.
- 제목부터 읽기
- 즉흥인지 구성인지에 따라 화면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즉각 터져 나온 화면과 오래 짜 맞춘 화면은 보는 속도부터 다르게 잡는 편이 좋아요.
- 보는 대신 들어 보기
- 어떤 색이 크게 울리고 어떤 선이 빠르게 지나가는지, 화면 어디가 시끄럽고 어디가 조용한지를 따라가 보세요. 무엇을 그렸는지 찾는 것보다 훨씬 빨리 화면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법학책을 덮고 뮌헨으로 떠난 서른 살의 남자는 결국 그림에서 형체를 걷어 내고 울림만 남기는 데까지 갔습니다. 다음에 알 수 없는 색과 선의 소용돌이를 만나거든 무엇을 그린 건지 알아내려 애쓰지 말고, 잠깐 눈을 맡겨 보세요. 알아보지 못한 채로도 붙들렸던 그의 경험은 사실 우리 몫으로도 남아 있으니까요.
자주 묻는 질문
칸딘스키는 왜 유명한가요?
대상을 그리지 않는 추상 회화의 문을 1910년대 초에 열어젖힌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그는 색과 형태만으로도 사람의 정신을 울릴 수 있다고 보았고, 1911년 펴낸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그 생각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후 20세기 미술이 걸어간 길의 출발점 하나로 꼽힙니다.
칸딘스키가 최초의 추상화가인가요?
그렇게 소개되는 경우가 많지만, 누가 언제 처음 추상에 도달했는지는 미술사에서도 여전히 의견이 갈려요. 비슷한 시기에 여러 화가가 각자의 경로로 대상을 지워 나갔거든요. 최초라고 못 박기보다 그 문을 처음 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으로 기억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칸딘스키는 정말 색을 들었나요?
색과 소리를 함께 지각했다고 전해지는 화가예요. 색을 볼 때 소리가 함께 떠오르는 감각을 공감각이라고 부르는데, 그가 어느 정도까지 그랬는지를 지금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즉흥이나 구성 같은 음악 용어를 그림 제목으로 삼은 것만 봐도, 색을 소리처럼 다뤘다는 점은 분명해요.
〈구성 7〉은 뭘 그린 그림인가요?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보라고 만든 그림이 아닙니다. 1913년에 그린 이 대작에는 격렬한 색과 곡선이 뒤엉켜 있을 뿐 알아볼 만한 대상이 없어요. 구성이라는 제목처럼 여러 요소를 짜 맞춰 화면 전체의 리듬을 만든 작품으로 보면 됩니다.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요.
칸딘스키 그림은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요?
무엇을 그렸는지 찾는 대신 화면을 음악처럼 들어 보세요. 어떤 색이 크게 울리고 어떤 선이 빠르게 지나가는지, 화면 어디에 소리가 몰리고 어디가 조용한지를 따라가면 됩니다. 정답을 맞히는 그림이 아니라 오래 머무를수록 리듬이 잡히는 그림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