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미술관에는 세로 2미터, 가로 3미터쯤 되는 커다란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센 강의 섬에서 일요일 오후를 보내는 파리 사람들을 그린 그림이에요. 양산을 든 여인,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 풀밭에 앉거나 누워 쉬는 사람들.
그런데 이 그림 코앞까지 다가가면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집니다. 남는 건 서로 다른 색의 작은 점과 짧은 획뿐이에요. 다시 몇 걸음 물러서면 점들이 모여 양산이 되고 잔디가 되고 사람이 되죠. 조르주 쇠라가 그린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입니다.
붓이 빠르게 지나간 자국이 아니라, 색을 골라 하나하나 찍은 점으로 쌓아 올린 화면이에요. 흔히 인상주의 다음 세대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그림이기도 합니다. 서른한 해를 살다 간 화가가 이 점들에 무엇을 걸었는지 처음부터 만나 볼게요.
파리의 젊은 이론가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는 1859년 12월 2일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술학교 에콜 데 보자르에서 그림을 배웠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어요. 그 뒤의 공부는 거의 혼자 해낸 쪽에 가깝습니다.
그가 파고든 것은 뜻밖에도 과학자들이 정리한 색채 이론이었습니다. 나란히 놓인 두 색이 서로를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는 슈브뢸의 색 대비 이론, 빛과 색이 눈에서 어떻게 섞이는지를 다룬 루드의 색채학 같은 것들이었어요. 화가의 감각에 맡겨 두던 색을 그는 원리로 붙잡아 보려 했습니다.
색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는 한동안 흑백 드로잉에 매달렸어요. 콩테 크레용으로 윤곽선을 거의 긋지 않고 명암만 쌓아 올린 그림들입니다. 밝고 어두운 덩어리만으로 사람과 사물이 떠오르게 했죠. 선 대신 명암으로 형태를 쌓는다는 점에서 훗날의 점과 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드로잉이라는 말이 어디까지를 가리키는지는 드로잉, 스케치, 데셍의 차이에 정리돼 있어요.
살롱에서 떨어진 첫 대작
1884년, 스물넷의 쇠라는 첫 대작 〈아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내놓습니다. 파리 교외의 센 강변에서 물에 들어가거나 풀밭에서 쉬는 노동자와 소년들을 그랑드 자트만큼이나 큰 화면에 담았어요.
이 그림은 공식 전시회인 살롱에서 떨어졌습니다. 쇠라는 같은 해 새로 생긴 앵데팡당전에 이 그림을 걸어요. 심사를 거치지 않는 전시였습니다. 그리고 이 전시장에서 훗날 그의 이론을 이어받게 될 젊은 화가 폴 시냐크를 만납니다.
하나 짚어 둘 점이 있어요. 이 그림은 아직 점묘로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강물도 인물도 붓질로 칠한 화면이고, 몇 군데를 나중에 점으로 손봤을 뿐이에요. 쇠라의 점은 다음 그림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1886년, 마지막 인상파전
같은 1884년, 쇠라는 센 강의 섬 그랑드 자트를 새 그림의 무대로 삼습니다. 그림 속 사람들은 산책하고, 풀밭에 눕고, 돛단배를 띄우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어요. 이 한 장면을 위해 그는 수십 점의 습작을 그렸고, 완성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한순간을 재빨리 붙잡던 인상주의와는 정반대의 속도였죠.
1886년, 이 그림은 여덟 번째 인상파전에 걸립니다. 열두 해 전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걸렸던 바로 그 전시의 마지막 회였어요. 그 첫 전시의 풍경은 모네, 빛을 그린 사람에 담겨 있습니다.
점으로 빼곡히 채운 화면과 뻣뻣하게 굳은 듯한 인물들은 곧장 논쟁의 한가운데 섰습니다. 그해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은 쇠라와 그 동료들의 새 그림에 신인상주의라는 이름을 붙여요. 인상주의의 빛을 물려받되, 그 빛을 감각이 아니라 이론으로 다시 짜려는 흐름에 붙은 이름입니다.
같은 무렵 세잔은 남프랑스에서 전혀 다른 길로 인상주의 너머를 찾고 있었습니다. 세잔은 덩어리로, 쇠라는 점과 이론으로 화면을 단단히 붙들려 한 셈이에요. 두 사람을 나란히 놓고 보고 싶다면 세잔, 순간 대신 구조를 그리다를 함께 읽어 보세요.
쇠라는 그 뒤에도 이 그림을 놓지 않았습니다. 1888~89년 무렵에는 화면 가장자리에 점으로 테두리를 덧그렸어요. 1924년 시카고 미술관에 온 뒤로는 좀처럼 시카고를 떠나지 않는 그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물을 보려면 시카고로 가야 한다는 뜻이에요.
점은 눈에서 어떻게 섞일까
쇠라의 방법은 흔히 점묘법(pointillisme)이라 불립니다. 원리는 이래요. 물감은 팔레트에서 섞을수록 탁해지기 쉬우니, 섞지 않은 순색을 작은 점으로 캔버스에 나란히 찍어 둡니다. 섞는 일은 그림 앞에 선 사람의 눈에 맡기고요. 떨어져서 보면 가까이 붙은 점들이 한 색처럼 어우러지는데, 이를 시각 혼합이라고 해요.
정작 쇠라와 동료들은 '점묘'보다 '분할(divisionnisme)'이라는 말을 더 좋아했다고 전해집니다. 점을 찍는 일 자체보다 색을 나눠 놓는 일이 핵심이었다는 뜻이에요.
그럼 이론대로 됐을까요. 실제 그림 앞에 서 보면 점들은 끝까지 하나로 섞이지 않습니다. 적당히 물러서도 색점이 조금씩 살아 있어서 화면 전체가 잘게 떨리듯 반짝여요. 쇠라는 이렇게 섞인 색이 더 밝고 선명할 거라 믿었지만, 물감 점은 빛처럼 더해지지 않아서 이론만큼 밝아지지는 않는다는 지적이 후대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어긋남이 오히려 그림의 표정이 됐어요. 인물은 조각처럼 멈춰 있는데 그 위의 공기는 쉬지 않고 떨립니다. 고요함과 떨림이 한 화면에 함께 있다는 것, 쇠라의 그림을 실물로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서커스와 서른한 살
그랑드 자트 뒤로도 쇠라는 큰 그림을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포즈를 취한 여인들〉, 〈서커스 퍼레이드〉, 〈샤위 춤〉. 제목만 봐도 무대가 강가의 휴일에서 화실과 서커스와 춤으로 옮겨 간 걸 알 수 있어요.
이 가운데 〈포즈를 취한 여인들〉은 같은 장면을 작게 그린 판본도 있는데, 그 작은 판본이 2022년 뉴욕 경매에서 1억 달러 넘는 값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림 한 점에 그런 값이 매겨지는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의 사정에서 따로 볼 수 있어요.
마지막 대작은 〈서커스〉(1890~1891)입니다. 쇠라는 이 그림을 끝내 완성하지 못했어요. 1891년 앵데팡당전에 미완의 〈서커스〉가 걸려 있던 동안, 그는 짧은 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891년 3월 29일, 서른한 살이었어요.
화가로 일한 시간이 짧았던 만큼 그가 남긴 대작은 몇 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한 점 한 점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해 둘 만해요.
- 〈아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1884)
- 런던 내셔널 갤러리. 살롱에서 떨어진 첫 대작
-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4~1886)
- 시카고 미술관. 마지막 인상파전에 걸린 대표작
- 〈포즈를 취한 여인들〉 (1886~1888)
- 필라델피아 반스 재단
- 〈서커스 퍼레이드〉 (1887~1888)
-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샤위 춤〉 (1889~1890)
- 네덜란드 크뢸러뮐러 미술관
- 〈서커스〉 (1890~1891)
- 파리 오르세 미술관. 끝내 완성하지 못한 마지막 대작
점이 남긴 것
쇠라의 방법은 먼저 가까운 화가들에게 번졌어요. 인상주의 1세대인 카미유 피사로도 1886년 무렵부터 몇 해 동안 점묘를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쇠라가 떠난 뒤 그 이론을 이어받아 정리한 사람이 시냐크였어요. 1899년 그는 『들라크루아에서 신인상주의까지』라는 책을 펴내 신인상주의의 색 이론을 글로 남깁니다.
점은 20세기로도 건너갔습니다. 1904~05년 무렵 마티스와 드랭 같은 젊은 화가들이 점묘를 실험했고, 그 실험을 지나 원색이 넓은 면으로 부딪치는 야수파로 나아가요. 점으로 나눠 두었던 순색이 이번에는 면이 되어 풀려난 셈이죠. 그 뒤의 이야기는 마티스, 색의 해방에서 가위까지에서 만날 수 있어요.
오늘날에는 쇠라의 점을 인쇄물의 망점이나 디지털 화면의 픽셀에 빗대는 말도 자주 들립니다. 작은 색 단위를 촘촘히 늘어놓아 멀리서 하나의 이미지로 보이게 한다는 점이 닮았으니까요. 물론 원리가 닮았다는 비유일 뿐, 쇠라가 이런 기술을 내다봤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인상주의가 인상주의와 야수파 사이 어디쯤 놓이는지는 미술 사조, 5분 만에 따라잡기에서 한눈에 볼 수 있어요.
쇠라는 서른한 해를 살았고, 화가로 산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았습니다. 그 사이 그는 색을 섞는 자리를 화가의 팔레트에서 보는 사람의 눈으로 옮겨 놓았어요. 언젠가 그의 그림 앞에 서게 되면 코앞까지 다가가 점을 보고, 다시 천천히 물러서 보세요. 점이 사람이 되는 그 몇 걸음 사이에 쇠라가 평생 붙든 질문이 들어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점묘법이 뭔가요?
물감을 팔레트에서 섞는 대신 섞지 않은 순색을 작은 점으로 나란히 찍어, 떨어져서 볼 때 보는 사람의 눈에서 색이 섞여 보이게 하는 방법이에요. 조르주 쇠라가 색채 이론을 바탕으로 이 방법을 세웠고, 쇠라와 동료들은 '점묘'보다 '분할'이라는 말을 더 좋아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어디에 있나요?
미국 시카고 미술관에 있습니다. 세로 약 2미터, 가로 약 3미터의 대작으로, 1924년 시카고 미술관에 온 뒤로는 좀처럼 시카고를 떠나지 않는 그림으로 알려져 있어요. 보러 갈 계획이라면 방문 전에 미술관 공식 사이트에서 전시 여부를 확인해 보세요.
신인상주의는 인상주의와 어떻게 다른가요?
인상주의가 순간의 빛을 빠른 붓질로 붙잡으려 했다면, 신인상주의는 그 빛을 색채 이론에 따라 계획적으로 다시 짜려 했어요. 순색의 작은 점을 나란히 찍어 눈에서 섞이게 하는 방법이 대표적입니다. 1886년 비평가 펠릭스 페네옹이 쇠라와 동료들의 그림에 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쇠라는 왜 일찍 세상을 떠났나요?
쇠라는 1891년 3월 29일, 서른한 살에 짧은 병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갑작스러운 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사인은 분명하지 않아요. 마지막 대작 〈서커스〉는 미완성인 채 그해 앵데팡당전에 걸려 있었습니다.
쇠라 그림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대표작들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어요.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는 시카고 미술관, 〈아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마지막 대작 〈서커스〉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반스 재단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대작이 있으니, 방문 전에 공식 사이트에서 전시 여부를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