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유난히 작은 그림을 만나면,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다가섭니다. 장욱진의 그림 앞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요. 그의 화면은 손바닥만 한 것부터 A4 용지 안팎까지, 대부분 작거든요. 가까이 다가서야 비로소 보입니다. 나무 위의 까치 한 마리, 그 곁의 집 한 채, 하늘에 뜬 해나 달, 그리고 아이와 개 같은 작은 식구들이요.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은 이중섭·박수근·김환기와 함께 한국 근대 회화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흔히 묶이는 화가입니다. 이중섭에게 소가, 박수근에게 이웃이, 김환기에게 점이 있었다면 장욱진에게는 까치와 집이 있었어요. 이 단순한 그림들이 어디서 왔는지, 그가 머문 자리를 따라 차례로 짚어 볼게요.

연기에서 도쿄까지

장욱진은 1917년 충청남도 연기, 지금의 세종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서울로 올라와 학교를 다녔고, 양정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9년 도쿄의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들어가 1943년까지 유화를 배웠어요.

그 시절 화가를 꿈꾸던 젊은이들에게 도쿄는 새로운 미술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문이었습니다. 이중섭과 김환기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문을 지났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중섭, 소와 가족의 화가와 김환기, 점으로 돌아간 사람에 따로 정리해 두었어요.

광복 뒤에는 김환기·유영국 등과 함께 신사실파 동인전에 참여합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그대로 옮기기보다 그 안의 본질을 새롭게 보자는 모임이었어요. 같은 모임의 김환기와 유영국이 추상의 길을 걸은 것과 달리, 장욱진은 까치와 나무와 집을 단순하게 줄여 가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터집니다. 1951년 그는 아이들과 함께 고향 연기로 내려가 지냈는데, 이때 그린 그림이 〈자화상〉이에요. 황금빛으로 물든 논 사이로 붉은 길이 나 있어요. 그 길 위에 정장 차림의 신사가 서 있고, 강아지 한 마리가 뒤를 따라옵니다. 그림 재료가 귀하던 때라 엽서만 한 종이에 그렸다고 해요. 작은 화면은 이후로도 그를 알아보게 하는 표지가 됩니다.

교수직을 내려놓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 장욱진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가 됩니다. 화가에게 안정된 자리였죠. 하지만 1960년 그는 이 자리를 내려놓고, 그 뒤로는 그림에만 전념합니다.

교수 시절에 그린 〈가족〉(1955)에는 긴 뒷이야기가 있어요. 장욱진이 처음 그린 가족 그림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1964년 그의 첫 개인전에서 일본인 소장가에게 팔린 뒤 오랫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습니다. 2023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일본에서 이 그림을 찾아내 소장품으로 들였고, 같은 해 회고전에서 60년 만에 다시 관객 앞에 걸렸어요.

덕소에서 마북리까지, 네 곳의 화실

학교를 떠난 그는 도시에서 한 걸음 물러나 화실을 차립니다. 1963년 경기도 덕소의 한강가에 화실을 짓고, 가족을 서울에 둔 채 혼자 지내며 그림에 매달렸어요. 이 덕소 시절이 열두 해 동안 이어집니다.

1975년에는 서울 명륜동 집으로 돌아와 집 뒤의 한옥에 화실을 꾸몄습니다. 1980년에는 충북 수안보의 농가를 고쳐 아내와 함께 지냈고, 1986년에는 경기도 용인 마북리의 낡은 한옥을 손봐 마지막 화실로 삼았어요. 그리고 1990년 12월, 그는 마북리 시절을 끝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 네 곳의 화실 서울대 교수 1954~1960 1960년 사직 이후 그림에만 전념 경기 서울 충북 경기 용인 덕소 명륜동 수안보 마북리 12년 5년 6년 5년 1963~1975 1975~1979 1980~1985 1986~1990 1950 1960 1970 1980 1990 연도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연보 기준, 막대 길이는 머문 햇수에 비례합니다
1954년부터 1990년까지 장욱진이 머문 자리를 햇수에 맞춰 늘어놓은, 연보를 바탕으로 한 도식이에요.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열두 해를 보낸 한강가의 덕소였고, 화실의 주소가 네 번 바뀌는 동안에도 그는 끝까지 작은 화면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플하다는 말

장욱진은 "나는 심플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화면 앞에 서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요.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까치, 나무, 집, 해와 달, 아이, 개와 소, 그리고 사람이에요. 손에 꼽을 만큼 몇 가지 되지 않고, 하나하나의 모양도 아이가 그린 것처럼 단순합니다.

배치는 더 독특합니다. 먼 것은 작게,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는 원근법을 그는 따르지 않았어요. 해와 나무와 집이 깊이 없이 한 평면 위에 나란히 놓이고, 그 사이는 동양화의 여백처럼 비어 있습니다. 그의 그림에 '동화 같다'는 평이 자주 따라붙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그의 단순함은 그리지 못해 생긴 빈자리가 아니라, 덜어 내고 남긴 자리입니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아이 그림이나 동화책 삽화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화면의 짜임은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어요. 같은 세대의 박수근이 물감을 겹겹이 쌓은 회백색 화면 위에 이웃의 일상을 새겼다면, 장욱진은 몇 안 되는 형상을 골라 한 평면 위에 놓는 쪽이었습니다. 박수근의 화면은 박수근, 화강암에 새긴 이웃에서 이어 볼 수 있어요.

그 몇 안 되는 형상 가운데서도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것이 까치예요. 나무와 집, 해와 달 곁에 까치가 되풀이해 등장하다 보니, 까치를 화가 자신을 대신하는 존재로 읽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떻게 읽든, 작은 화면에서 그 새 한 마리를 먼저 찾아보는 것이 그의 그림을 보는 좋은 출발점이 돼요.

장욱진 그림, 이렇게 보기
한 걸음 다가서기
화면이 작아서 멀리서는 놓치기 쉬워요. 가까이 다가서야 작은 형상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드러냅니다.
하나씩 세어 보기
까치, 나무, 집, 해와 달, 아이. 한 화면에 몇 가지가 나오는지 세어 보세요. 생각보다 적다는 데서 그의 단순함이 보입니다.
원근 대신 자리
무엇이 멀고 가까운지보다 무엇이 어디에 놓였는지를 보세요. 해와 집과 사람이 한 평면 위에서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어디서 만날 수 있나

장욱진의 그림을 상설 전시로 만날 수 있는 곳으로는 경기도 양주 장흥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먼저 꼽힙니다. 2014년 4월에 문을 연, 그의 이름을 단 미술관이에요. 전시 일정과 관람 안내는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기억해 둘 만해요. 앞에서 본 〈가족〉이 이곳 소장품이 됐고,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도 장욱진의 작품이 들어 있었거든요. 무엇이 어디로 갔는지는 이건희 컬렉션, 어디서 볼 수 있나요?에 정리돼 있습니다. 2023년 9월부터 2024년 2월까지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이 열려 학창 시절부터 말년까지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으기도 했어요. 다만 소장품은 전시 일정에 따라 걸리고 내려가니, 방문 전에 국립현대미술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방탄소년단 RM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꾸린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의 《RM x SFMOMA: Between You and Me》에도 장욱진의 작품이 나왔고, 전시는 2026년 10월 3일부터 2027년 2월 7일까지 열립니다. 이 전시에 함께 나온 한국 근현대 작가들은 RM 컬렉션으로 읽는 한국 근현대미술에 따로 묶어 두었어요.

작은 그림 앞에 서게 되거든,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 다가가 화면에 놓인 것들을 하나씩 세어 보세요. 까치 하나, 나무 하나, 집 하나. 셈이 생각보다 금방 끝난다면, 그게 바로 그가 말한 심플함일지도 몰라요.

자주 묻는 질문

장욱진은 어떤 화가인가요?

장욱진(1917~1990)은 이중섭·박수근·김환기와 함께 한국 근대 회화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꼽히는 서양화가예요.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도쿄 제국미술학교에서 유화를 배웠고, 1960년 서울대 미대 교수직을 내려놓은 뒤 여러 화실을 옮겨 다니며 까치와 나무, 집, 해와 달 같은 소박한 소재를 작은 화면에 단순하게 그렸습니다.

장욱진은 왜 까치를 많이 그렸나요?

까치는 나무, 집, 해와 달과 함께 그의 화면에 되풀이해 나오는 모티프예요. 그래서 까치를 화가 자신을 대신하는 존재로 읽는 해석이 있습니다. 다만 하나의 정답이 정해진 것은 아니니, 그림마다 까치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 곁에 무엇이 놓였는지를 살피며 자기만의 읽기를 더해 보는 것도 좋아요.

장욱진의 그림은 왜 이렇게 작은가요?

그의 그림은 손바닥만 한 것부터 A4 용지 안팎의 크기가 대부분이에요. 그림 재료가 귀하던 1951년에는 엽서만 한 종이에 〈자화상〉을 그렸고, 그 뒤로도 끝까지 작은 화면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넓은 화면을 채우기보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는 그의 단순함과 잘 어울리는 크기로 읽히기도 해요.

장욱진 작품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2014년 4월 경기도 양주 장흥에 문을 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 대표적이에요. 국립현대미술관도 2023년 그의 〈가족〉(1955)을 소장품으로 들였고, 2021년 이건희 컬렉션 기증에도 장욱진의 작품이 포함됐습니다. 소장품은 전시 일정에 따라 걸리고 내려가니, 방문 전에 각 미술관의 공식 안내를 확인하세요.

장욱진은 이중섭·박수근과 어떻게 다른가요?

세 사람 모두 1910년대에 태어나 한국 근대 회화를 대표하는 이름으로 함께 묶여요. 이중섭이 굵은 선의 소와 가족으로, 박수근이 화강암 같은 질감 위의 이웃들로 기억된다면, 장욱진은 까치와 나무, 집과 해와 달을 작은 화면에 단순하게 배치한 그림으로 기억됩니다. 원근을 버리고 한 평면 위에 놓는 구성이 그를 알아보게 하는 표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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