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망사 휘장이 드리운 요람 곁에 한 여성이 턱을 괴고 앉아 있습니다. 눈길은 얇은 천 너머에서 잠든 아기에게 가 있어요. 극적인 사건도 화려한 장식도 없는데, 이상하게 오래 보게 되는 그림입니다. 베르트 모리조가 1872년 언니 에드마를 그린 〈요람〉이에요.

이 그림은 1874년 봄, 훗날 첫 인상파전으로 불리게 될 전시에 걸렸습니다. 그 자리에 그림을 건 화가 가운데 여성은 모리조 한 사람뿐이었어요. 마네의 그림 속 모델로 먼저 이름을 접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인상주의를 처음부터 함께 연 화가였습니다.

베르트 모리조, 요람(Le Berceau), 1872, 유화,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베르트 모리조, 〈요람〉, 1872년. 오르세 미술관 소장. 턱을 괸 어머니의 시선이 투명한 휘장 너머 잠든 아기에게 비스듬히 내려앉아 있어요.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코로에게 배운 자매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는 1841년 1월 14일 프랑스 중부의 부르주에서 태어나 1895년 3월 2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쉰네 해의 생애였어요.

유복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언니 에드마와 함께 그림을 배웠습니다. 1860년대에는 당대의 이름난 풍경화가 카미유 코로에게 지도를 받았고요. 배움의 길이 넓지는 않았어요. 국립 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가 여성의 입학을 받지 않던 시절이라, 자매는 개인 교습을 받고 루브르에서 옛 그림을 베끼며 실력을 쌓았습니다.

성과는 일찍 찾아옵니다. 1864년 모리조는 파리 살롱에 처음 입선했고, 이후 여러 차례 그림을 냈어요. 언니 에드마도 같은 무렵 살롱에 그림을 냈지만, 1869년 결혼한 뒤로는 붓을 내려놓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람〉에서 아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바로 그 언니예요. 나란히 그림을 시작한 자매 가운데 한 사람은 그리는 자리에, 다른 한 사람은 그려지는 자리에 서게 된 셈입니다.

마네의 모델, 그리고 동료

1868년, 루브르에서 그림을 베끼던 모리조는 화가 팡탱라투르의 소개로 에두아르 마네를 만납니다. 이후 그는 마네의 그림에 여러 차례 모델로 등장해요. 〈발코니〉(1868~69)에서 난간에 기대 앉은 여성이 모리조이고,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한 〈제비꽃 다발을 든 베르트 모리조〉(1872)도 그의 초상입니다.

모델로 앉던 그 시절에도 모리조는 자기 이젤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네가 제비꽃 다발의 초상을 그린 1872년은 모리조가 〈요람〉을 그린 해이기도 하거든요. 두 사람은 모델과 화가이기 이전에 서로의 작업을 아는 가까운 동료였습니다.

다만 두 사람이 고른 무대는 달랐어요. 마네가 끝까지 살롱을 고집하며 인상파전에 한 번도 나가지 않은 반면, 모리조는 1874년 살롱 바깥의 전시를 택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와 결혼해 마네 집안의 가족이 되죠. 마네 쪽에서 본 이 무렵의 이야기는 마네, 살롱을 떠나지 않은 혁명가에 있어요.

1874년, 유일한 여성 창립 멤버

1874년 4월, 파리에서 화가들이 살롱 바깥에 스스로 꾸린 첫 전시가 열립니다. 모네와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같은 이름들 사이에 모리조는 창립 멤버 가운데 유일한 여성으로 이름을 올렸어요. 〈요람〉을 비롯한 그의 그림 여러 점도 이 벽에 걸렸습니다.

이 무리의 전시는 1886년까지 모두 여덟 번 열렸습니다. 모리조는 그 가운데 일곱 번에 그림을 냈어요. 빠진 것은 1879년 네 번째 전시 한 번뿐인데, 전해인 1878년 딸 쥘리를 낳은 뒤라 쉬어 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혼한 뒤에도, 아이를 낳은 뒤에도 그는 다음 전시로 돌아왔어요. 여덟 번의 전시를 통틀어 가장 꾸준히 자리를 지킨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덟 번의 인상파전, 모리조의 자리 8회 가운데 7회 참여 인상파전 1회 2회 3회 4회 5회 6회 7회 8회 1874 1876 1877 1879 1880 1881 1882 1886 〈요람〉 출품 유일한 여성 불참 마지막 회 출산 뒤 쉬어 간 해 모리조의 삶 외젠 마네와 결혼 1874년 12월 딸 쥘리 출생 1878년 참여 불참 삶의 사건 점 사이 간격은 실제 햇수에 맞춰 그렸습니다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여덟 번 열린 인상파전에서 모리조가 그림을 낸 회차를 표시한 개념 도식입니다. 빠진 것은 딸이 태어난 이듬해 봄의 전시 한 번뿐이에요. 점이 거의 끊김 없이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이 그룹에서 그가 차지한 자리를 말해 줍니다.

이 첫 전시에서 '인상주의'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었는지는 모네, 빛을 그린 사람에, 같은 자리에 창립 멤버로 선 또 한 사람의 이야기는 르누아르, 기쁨의 편에 선 화가에 있어요.

빠른 붓, 가까운 일상

모리조의 그림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붓질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물감을 여러 겹 쌓아 매끈하게 다듬는 대신, 빠르고 성긴 붓질 몇 번으로 형태를 세우고 거기서 손을 떼요. 화면 가장자리는 칠하다 만 것처럼 남겨 두기도 했습니다. 끝까지 채우지 않은 그 가장자리 덕분에 화면 전체가 막 붙잡은 한순간처럼 보이죠. 색은 대체로 밝고, 흰색을 넓게 써서 화면이 환합니다.

소재는 대부분 가까운 데서 왔습니다. 집 안의 방과 정원,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 가족이 함께 보내는 한때 같은 장면이에요. 여기에는 시대의 사정도 겹쳐 있습니다. 같은 무렵 남성 동료들 가운데 여럿은 카페와 극장, 무대 뒤에서 소재를 찾았지만, 부르주아 집안의 여성이 그런 곳에 혼자 드나들기는 어려웠거든요. 드가, 무대 뒤를 그린 관찰자가 오래 머문 연습실과 무대 뒤도 모리조에게는 쉽게 열리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을 좁은 세계로만 읽을 일은 아니에요. 모리조는 자기가 머물 수 있던 방과 정원, 공원의 호수를 동료들과 같은 질문으로 그렸습니다. 흔들리는 빛과 지나가는 한순간을 어떻게 화면에 붙잡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요.

갈 수 없는 곳이 있었다는 사실과, 갈 수 있는 곳을 누구 못지않게 새롭게 그렸다는 사실. 모리조를 볼 때는 이 둘을 함께 기억해 두면 좋아요.

1879년 무렵의 〈여름날〉이 좋은 예입니다. 파리 서쪽 불로뉴 숲의 호수 위, 보트 한 척에 두 여인이 앉아 있어요. 물결과 옷자락, 물가의 나무가 모두 비슷한 빠르기의 붓질로 그려져서, 사람과 풍경 사이의 경계가 군데군데 풀려 있습니다.

베르트 모리조, 여름날(Jour d'été), 1879년경, 유화,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베르트 모리조, 〈여름날〉, 1879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오른쪽 물 위의 오리부터 반짝이는 물결까지, 짧게 꺾이는 붓자국이 화면을 고르게 덮고 있어요.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모리조의 대표작, 어디에 있나요
〈요람〉 (1872)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74년 첫 인상파전에 걸린 그림
〈나비 사냥〉 (1874)
파리 오르세 미술관. 나비채를 든 여성과 아이들이 있는 정원
〈거울 앞의 젊은 여인(프시케)〉 (1876)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프시케'는 전신 거울을 부르는 프랑스어
〈여름날〉 (1879년경)
런던 내셔널 갤러리. 불로뉴 숲 호수의 보트 위 두 여인
〈무도회의 젊은 여인〉 (1879)
파리 오르세 미술관. 1894년 프랑스 국가가 사들인 그림
〈식당에서〉 (1886)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증명서에 적혔다는 '직업 없음'

1890년대에 들어 모리조의 이름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1892년 파리의 부소·발라동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894년에는 〈무도회의 젊은 여인〉을 프랑스 국가가 사들였어요. 살아 있는 동안 그의 그림이 국가 소장품이 된 겁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5년 3월, 모리조는 병을 앓던 딸을 돌보다 자신도 병을 얻어 쉰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망 증명서 직업란에는 '직업 없음'이라고 적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살롱에 입선하고, 일곱 번의 인상파전에 그림을 걸고, 개인전을 열고, 국가가 그림을 사들인 화가였는데도요.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 일화가 오래 인용되는 것은, 당대 여성 화가가 놓였던 자리를 한 줄로 보여 주기 때문일 거예요.

서류가 그를 어떻게 불렀든, 그의 그림은 이미 일곱 번의 인상파전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모리조 이후

모리조가 떠난 이듬해인 1896년, 파리 뒤랑뤼엘 화랑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립니다. 전시를 꾸린 것은 드가와 모네, 르누아르, 그리고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 같은 오랜 동료와 벗들이었어요. 첫 인상파전을 함께 연 화가들이 이번에는 그의 그림만으로 벽을 채운 셈입니다. 딸 쥘리 마네가 남긴 일기도 인상파 화가들을 곁에서 지켜본 기록으로 전해져요.

그 뒤로 오랫동안 모리조의 이름은 함께 전시했던 동료들만큼 자주 불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인상주의를 처음부터 함께 만든 화가로 다시 읽히고 있어요. 2013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점심 식사 후〉(1881)가 약 1,090만 달러에 팔리며, 한때 여성 작가 작품의 경매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모리조의 회고전이 열린 1896년, 수원에서는 훗날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로 불릴 나혜석이 태어났어요. 그 이야기는 나혜석, 시대보다 이른 질문에 따로 있습니다. 인상주의가 미술사의 큰 흐름에서 어디쯤 놓이는지는 미술 사조, 5분 만에 따라잡기에서 한눈에 볼 수 있고요.

언젠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요람〉 앞에 서게 되거든, 아기 위에 드리운 휘장을 한번 오래 보세요. 얇은 천 한 겹이 몇 번의 붓질만으로 투명하게 떠 있습니다. 그 붓질이 모리조가 평생 해 온 일이었어요.

자주 묻는 질문

베르트 모리조는 어떤 화가인가요?

1841년 프랑스 부르주에서 태어나 1895년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인상주의 화가예요. 1874년 첫 인상파전에 창립 멤버로 참여한 유일한 여성이었고, 여덟 번의 인상파전 가운데 일곱 번에 그림을 냈습니다. 빠르고 성긴 붓질과 밝은 색으로 실내와 정원, 가족의 일상을 주로 그렸어요.

모리조와 마네는 어떤 관계였나요?

1868년 루브르에서 그림을 베끼던 모리조가 팡탱라투르의 소개로 마네를 만났어요. 이후 〈발코니〉와 〈제비꽃 다발을 든 베르트 모리조〉 등 마네의 여러 그림에 모델로 등장했고, 1874년 12월에는 마네의 동생 외젠 마네와 결혼해 가족이 됐습니다. 다만 마네가 인상파전에 한 번도 나가지 않은 것과 달리 모리조는 첫 회부터 참여했어요.

모리조는 인상파전에 몇 번 참여했나요?

1874년부터 1886년까지 열린 여덟 번의 인상파전 가운데 일곱 번에 그림을 냈어요. 빠진 것은 1879년 네 번째 전시 한 번으로, 전해인 1878년 딸 쥘리를 낳은 뒤라 쉬어 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첫 전시에 그림을 건 화가 가운데 여성은 모리조 한 사람뿐이었어요.

〈요람〉은 어디에 있나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있어요. 1872년 작품으로, 모리조의 언니 에드마가 휘장 너머 잠든 아기를 내려다보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1874년 첫 인상파전에 걸린 그림이기도 해요. 소장품은 전시 사정에 따라 걸리거나 내려갈 수 있으니, 방문 전에 미술관 공식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모리조 작품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요람〉, 〈나비 사냥〉, 〈무도회의 젊은 여인〉을 만날 수 있어요. 〈여름날〉은 런던 내셔널 갤러리, 〈거울 앞의 젊은 여인(프시케)〉는 마드리드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 〈식당에서〉는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걸리는 작품은 시기마다 달라지니 방문 전에 각 미술관 안내를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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