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이런 그림 앞에 서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흰 바탕을 검은 선 몇 줄이 가로세로로 나누고, 그렇게 생긴 칸 몇 개에 빨강과 파랑과 노랑이 칠해져 있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자를 대고 그으면 나도 그리겠다는 생각이 스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대상이 사라진 그림이 왜 이토록 낯설게 느껴지는지는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에서 따로 다뤘으니, 여기서는 다른 길로 들어가 볼게요. 이 격자가 '그냥 격자'가 아닌 이유는 선들이 어디서 왔는지에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피트 몬드리안은 처음부터 선을 긋던 화가가 아니었어요. 그의 출발점은 나무 한 그루였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선이 되기까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1872년 3월 7일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에서 태어나 1944년 2월 1일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흔한 해를 살았어요. 태어날 때 이름은 피터르 코르넬리스 몬드리안(Pieter Cornelis Mondriaan)으로, 성의 철자에 'a'가 하나 더 들어 있었습니다.

초기의 그는 네덜란드의 풍경과 나무를 그리는 화가였어요. 그중 나무 그림 몇 점을 그린 순서대로 나란히 놓으면, 한 화가의 눈이 어디로 옮겨 갔는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붉은 나무〉(1908~1910년경)에서는 짙은 푸른빛을 배경으로 붉은 줄기와 가지가 뒤틀리며 뻗어 있어요. 색은 강렬해도 아직은 누가 봐도 나무입니다. 그런데 1911년의 〈회색 나무〉로 오면 색이 거의 빠지고, 가지는 화면을 가로지르는 검은 선처럼 변합니다.

피트 몬드리안, 회색 나무(De grijze boom), 1911, 캔버스에 유화, 헤이그 쿤스트뮤지엄 소장
피트 몬드리안, 〈회색 나무〉, 1911. 헤이그 쿤스트뮤지엄 소장. 회색과 검정만 남은 화면에서 가지들이 양옆으로 활처럼 휘어 뻗고, 그 사이의 하늘은 짧은 회백색 붓질로 잘게 나뉘어 있어요.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이듬해의 〈꽃 피는 사과나무〉(1912)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가지는 짧은 곡선 조각으로 흩어지고, 그 사이사이에 짧은 수직선과 수평선이 끼어들기 시작해요. 제목을 모르고 보면 나무라는 걸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세 점 모두 헤이그 쿤스트뮤지엄(옛 헤이그 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요.

가지가 선이 되고, 선이 다시 수직과 수평으로 정리되는 과정이 이 연작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훗날의 격자가 어디서 왔는지 묻는다면, 답은 이 나무들에 있어요.

파리의 입체파, 발이 묶인 네덜란드

1912년 무렵 몬드리안은 파리로 건너갑니다. 이름에서 'a' 하나를 빼고 'Mondrian'이라고 쓰기 시작한 것도 파리로 간 뒤의 일로 알려져 있어요.

파리에서 그를 붙든 건 피카소와 브라크가 이끌던 입체파(큐비즘)였습니다. 한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본 모습을 한 화면에 포개는 그림이요. 대상을 잘게 쪼개 다시 짜는 이 방식을 만나면서, 몬드리안의 나무는 한층 더 선과 면으로 흩어집니다. 입체파가 무엇을 부쉈는지는 피카소, 매번 다시 시작한 화가에 자세히 나와 있어요.

다만 입체파의 그림은 아무리 잘게 쪼개도 결국 무언가를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몬드리안은 그 너머, 대상 자체를 지우는 쪽으로 걸어갑니다.

그러다 1914년, 네덜란드에 잠시 들른 사이 1차 세계대전이 터집니다. 파리로 돌아갈 길이 막힌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네덜란드에 머물러야 했어요. 뜻하지 않게 발이 묶인 이 몇 해가 오히려 다음 걸음의 무대가 됩니다.

데 스테일과 신조형주의

1917년 몬드리안은 테오 반 두스뷔르흐 등과 함께 잡지 《데 스테일(De Stijl)》을 창간합니다. 네덜란드어로 '양식'이라는 뜻이에요. 이 잡지를 무대로 그가 내세운 생각이 신조형주의(Neoplasticism)입니다. 규칙은 놀랄 만큼 단출해요.

신조형주의의 규칙
선
수직선과 수평선만 씁니다. 사선도 곡선도 없어요.
색
삼원색인 빨강·파랑·노랑, 그리고 무채색인 검정·흰색·회색만 씁니다.
목표
자연의 특수한 형태를 지우고, 보편적인 균형을 찾는 것.

이 생각은 그가 1917년부터 이듬해까지 《데 스테일》에 연재한 글 〈회화의 신조형주의〉에 담겨 있습니다.

'특수한 형태를 지운다'는 말이 어렵게 들리면 다시 나무를 떠올려 보세요. 세상의 나무는 저마다 생김새가 다릅니다. 가지가 휘는 방향도, 잎의 빛깔도 제각각이죠. 몬드리안은 그런 '이 나무만의 모습'을 하나씩 걷어 내면 어떤 나무와 풍경에도 통하는 균형이 남는다고 보았고, 그 균형을 수직과 수평, 가장 기본이 되는 색으로 그리려 했습니다.

나무에서 격자까지, 덜어 내기의 네 단계 개념 도식 ① 가지 ② 선 ③ 수직·수평 ④ 삼원색 면 자연 그대로의 나무 가지가 선으로 두 방향만 남기기 격자와 빨강·파랑·노랑
나무가 격자가 되기까지를 네 단계로 줄여 본 개념 도식이에요(실제 작품이 아닙니다). 곡선이 직선이 되고 직선이 수직과 수평 두 방향만 남는 동안, 색도 자연의 빛깔에서 삼원색으로 옮겨 갔습니다. 격자는 나무를 버린 결과라기보다 나무에서 시작한 덜어 내기의 끝에 가까워요.

칸딘스키와 나란히 놓으면 이 길이 더 또렷해집니다. 두 사람 모두 대상을 지운 추상의 개척자로 꼽히지만 방향은 정반대였어요. 칸딘스키가 음악처럼 즉흥적인 색과 곡선을 좇았다면, 몬드리안은 수직과 수평이라는 두 방향만으로 질서를 쌓아 올렸습니다. 한 사람은 소리를, 다른 한 사람은 균형을 찾아간 셈이에요.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같은 1944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칸딘스키 쪽 이야기는 칸딘스키, 눈으로 듣는 그림에서 이어 읽을 수 있어요.

1920년대, 격자가 완성되다

1919년 파리로 돌아온 몬드리안은 1920년대에 들어 우리가 아는 그 화면을 완성합니다. 검은 선이 화면을 가로세로로 나누고, 그렇게 생긴 칸 가운데 몇 개에만 원색이 들어가요. 나머지는 흰색이나 회색으로 남겨 둡니다.

제목도 화면만큼 담백해졌어요. 대개 '구성(Composition)'이라는 말에 번호나 색 이름을 붙이는 식이었습니다. 1930년에 그린 〈빨강·파랑·노랑의 구성 II〉도 그렇게 이름 붙은 그림이에요.

피트 몬드리안, 빨강·파랑·노랑의 구성 II(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 1930, 캔버스에 유화,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소장
피트 몬드리안, 〈빨강·파랑·노랑의 구성 II〉, 1930.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소장. 자로 찍어 낸 듯 반듯한 화면이지만, 흰 면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물감 표면에 가는 잔금이 가 있어 손으로 칠한 그림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이 그림 앞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오른쪽 위의 커다란 빨강이에요. 화면의 절반 남짓을 차지하니 한쪽으로 기울어 보일 법한데, 이상하게 그렇지 않습니다. 왼쪽 아래의 파랑과 오른쪽 아래 귀퉁이의 작은 노랑, 굵기가 서로 다른 검은 선들이 그 무게를 맞받고 있거든요. 좌우를 똑같이 맞춘 대칭이 아니라, 크기도 자리도 다른 것들이 서로 버텨서 만든 균형입니다.

몬드리안의 격자는 자를 대고 아무렇게나 그은 줄이 아니에요. 나무에서 출발해 덜어 내고 또 덜어 낸 끝에 남은 뼈대입니다.

기하 추상 앞에서는 무엇을 그렸는지보다 비례와 균형을 보라는 이야기를 추상화, 뭘 보고 감상해야 하나요?에서 자세히 풀어 두었어요. 몬드리안은 그 말이 가장 잘 들어맞는 화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뉴욕, 노란 선의 부기우기

1938년 몬드리안은 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1940년에는 다시 뉴욕으로 옮겨 갑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도시에서 그의 격자가 한 번 더 달라져요. 오래 지켜 온 검은 선을 버리고, 노란 선으로 격자를 짠 겁니다.

그 대표작이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43)입니다. 노란 선들이 바둑판처럼 화면을 가르고, 선 위로는 작은 색 블록이 촘촘히 박혀 있어요. 맨해튼의 격자 모양 거리와 부기우기라는 재즈의 경쾌한 리듬을 담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하고 있으니, 뉴욕에 갈 일이 있다면 실물 앞에 서 볼 만해요.

마지막 작품은 〈빅토리 부기우기〉(1942~44)입니다. 몬드리안은 이 그림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채 1944년 2월 뉴욕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미완으로 남은 이 그림은 헤이그 쿤스트뮤지엄에 있습니다. 나무 연작과 마지막 그림이 한 미술관에 함께 모여 있는 거죠.

몬드리안 이후

몬드리안의 격자는 캔버스 밖으로도 걸어 나갔습니다. 데 스테일에 함께한 헤리트 리트펠트는 〈빨강 파랑 의자〉를 만들고 슈뢰더 하우스를 설계했어요. 평면 위의 수직과 수평이 의자가 되고 집이 된 겁니다. 칸딘스키가 학생을 가르치던 독일의 바우하우스에도 이 생각이 스며들었고요. 1965년 이브 생로랑이 몬드리안의 구성을 옮긴 드레스를 선보이면서, 그의 격자는 미술관 밖에서도 누구나 알아보는 이미지가 됐습니다. 포스터와 광고에서 검은 선과 원색 네모를 자주 마주치는 것도 이 흐름 위에 있어요.

눈에 보이는 것을 덜어 내다 끝에 남은 요소를 붙든 화가는 몬드리안만이 아닙니다. 한국의 김환기는 달항아리와 산의 형상을 지우고 점을 남겼어요. 몬드리안에게 남은 것이 수직선과 수평선이었다면, 김환기에게 남은 것은 점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뉴욕에서 마지막 시기를 보냈다는 점도 눈길을 끌어요. 그 이야기는 김환기, 점으로 돌아간 사람에 담겨 있고, 입체파 이후 20세기 미술이 어떤 사조를 거쳐 흘러갔는지는 미술 사조, 5분 만에 따라잡기에서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몬드리안 앞에서 챙길 두 가지
면적의 무게 재기
가장 넓은 색 면과 가장 작은 색 면을 먼저 찾아보세요. 둘이 어디에 놓였는지, 흰 면과 검은 선이 그 사이를 어떻게 받치는지 보다 보면 대칭 없이도 기울지 않는 균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무를 겹쳐 보기
격자 앞에서 막막하다면 〈회색 나무〉의 가지를 떠올려 보세요. 이 선들이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나무에서 덜어 내고 남은 뼈대라는 걸 알면, 화면이 한결 가깝게 다가옵니다.

나무를 그리던 화가는 가지를 선으로, 선을 수직과 수평으로, 색을 세 가지 원색으로 줄여 나갔습니다. 다음에 미술관에서 검은 선과 원색 네모를 만나거든, 나도 그리겠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그 뒤에 선 나무 한 그루를 잠깐 떠올려 보세요. 단순해 보이는 격자일수록 덜어 낸 것이 많은 그림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몬드리안은 왜 격자만 그렸나요?

자연의 특수한 형태를 지우고 보편적인 균형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1917년 무렵부터 수직선과 수평선, 삼원색과 무채색만으로 화면을 짜는 신조형주의를 내세웠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격자를 그린 건 아니에요. 〈붉은 나무〉와 〈회색 나무〉 같은 나무 연작에서 가지가 선으로 바뀌어 간 긴 과정 끝에 나온 화면입니다.

신조형주의가 뭔가요?

피트 몬드리안이 1917년 창간에 함께한 잡지 《데 스테일》을 무대로 내세운 회화의 원칙이에요. 수직선과 수평선, 삼원색인 빨강·파랑·노랑과 무채색인 검정·흰색·회색만으로 화면을 구성합니다. 그의 생각은 1917년부터 이듬해까지 연재한 글 〈회화의 신조형주의〉에 정리돼 있어요.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어디에 있나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하고 있어요. 몬드리안이 뉴욕으로 옮겨 간 뒤 1942~43년에 그린 그림으로, 검은 선 대신 노란 선으로 격자를 짜고 그 위에 작은 색 블록을 넣었습니다. 맨해튼의 격자 모양 거리와 부기우기라는 재즈의 리듬을 담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어요. 보러 갈 계획이라면 방문 전에 공식 사이트에서 전시 여부를 확인해 보세요.

몬드리안 그림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네덜란드 헤이그 쿤스트뮤지엄에 〈붉은 나무〉, 〈회색 나무〉, 〈꽃 피는 사과나무〉 같은 나무 연작과 마지막 작품 〈빅토리 부기우기〉가 있어요.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1930년작 〈빨강·파랑·노랑의 구성 II〉는 취리히 쿤스트하우스에 있습니다. 방문 전에 공식 사이트에서 전시 여부를 확인해 보세요.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은 어떻게 다른가요?

두 사람 모두 대상을 지운 추상의 개척자로 꼽히지만 방향은 정반대였어요. 칸딘스키는 음악처럼 즉흥적인 색과 곡선으로 화면을 울리게 했고, 몬드리안은 수직선과 수평선, 삼원색만으로 질서와 균형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칸딘스키 앞에서는 리듬을, 몬드리안 앞에서는 면적과 비례의 균형을 보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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