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와 포스터, 머그잔과 티셔츠에서 한 번쯤 스쳤을 그림이 있습니다. 거대한 파도가 하얀 물보라를 발톱처럼 세우고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솟아 있는 그림이요. 그런데 이 그림이 원래 속한 연작의 제목을 알고 나면 조금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제목은 〈후지산 36경〉, 후지산을 그린 서른여섯 장면이라는 뜻이에요. 정작 후지산은 파도 사이 저 멀리, 손톱만 한 크기로 앉아 있습니다.

파도가 주인공이 된 그림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 1830~32년경, 다색 목판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가쓰시카 호쿠사이,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1830~32년경. 〈후지산 36경〉 연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왼쪽에서 솟은 파도가 발톱 같은 포말을 드리운 아래로 배 세 척의 사공들이 몸을 낮추고, 후지산은 화면 한가운데 아래쪽에 작게 앉아 있어요. Public domai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神奈川沖浪裏)〉, 흔히 짧게 '파도'라고 부르는 그림입니다. 화면은 왼쪽에서 시작해요. 거대한 파도가 솟아올라 발톱 같은 포말을 드리우고, 그 아래에서는 오시오쿠리부네라 불리는 작은 배 세 척이 물살에 들려 있어요. 배 위의 사공들은 몸을 잔뜩 숙인 채 버티는 중입니다. 그리고 파도와 파도 사이, 멀리 수평선 위에 후지산이 작게 앉아 있어요.

후지산을 그리는 연작에서 파도가 주인공이 되고 후지산은 배경으로 물러난 셈입니다. 이 역전이 그림의 핵심이에요. 요동치는 바다와 버티는 사람들 너머로 산은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그 대비 덕분에 작은 산이 오히려 화면의 중심처럼 느껴집니다. 이 그림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 가운데 하나로 꼽혀요.

후지산을 그린 연작에서 가장 유명해진 한 장은, 후지산을 파도 뒤로 물려 놓은 그림이었어요.

이 파도를 그린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는 1760년 에도, 오늘날의 도쿄에서 태어나 1849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든여덟 해를 살면서 70년 넘게 그림을 그린 우키요에 화가예요.

호쿠사이 한눈에
태어난 해와 곳
1760년, 에도(오늘날의 도쿄)
세상을 떠난 해
1849년. 여든여덟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린 기간
70년 넘게. 전성기는 일흔을 넘기고 찾아왔어요
대표작
〈후지산 36경〉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와 〈개풍쾌청〉, 스케치 모음집 〈호쿠사이 만화〉
이름
화가로서 쓰는 이름(화호)을 서른 번 넘게 바꿨다고 전해집니다. 말년의 화호는 '가쿄로진 만지', 그림에 미친 노인이라는 뜻이에요

네 손을 거친 판화 한 장

우키요에는 에도 시대의 다색 목판화, 곧 니시키에입니다. 그런데 이 판화 한 장은 화가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먼저 화가(에시)가 밑그림을 그립니다. 조각가(호리시)가 그 밑그림을 나무판에 새기고, 인쇄공(스리시)이 그 판으로 종이에 찍어 내요. 무엇을 만들지 기획하고 완성된 판화를 파는 일은 출판사(한모토)의 몫이었습니다. 우리가 호쿠사이의 작품이라 부르는 판화도, 따지고 보면 호쿠사이가 밑그림을 맡고 네 역할이 나눠 완성한 합작인 셈이에요.

우키요에 한 장이 나오기까지 기획과 주문 화가 에시 밑그림을 그린다 조각가 호리시 판을 새긴다 인쇄공 스리시 종이에 찍는다 출판사 한모토 기획하고 판다 한 판에서 여러 장 새긴 판 ··· 같은 그림이 수천 장 에디션 번호 없음 여러 미술관에 나뉘어 소장 역할을 단순하게 줄인 개념 도식입니다
우키요에 제작의 분업을 단순하게 줄인 개념 도식입니다. 한 장의 판화 뒤에는 밑그림과 새김, 찍기, 기획과 판매를 나눠 맡은 손이 있었고, 판에서 같은 그림이 수천 장 나왔으니 우키요에는 처음부터 여러 사람이 나눠 갖는 그림이었던 셈이에요.

판화였으니 그림이 한 장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그림이 수천 장씩 찍혀 팔려 나갔어요. 판에서 찍어 낸 그림을 왜 복제품이 아니라 원본으로 보는지는 판화, 복제품 아닌가요?에서 따로 다뤘어요.

일흔 무렵에 찾아온 전성기

호쿠사이의 전성기는 늦게, 일흔 무렵에 찾아왔습니다.

〈후지산 36경(富嶽三十六景)〉은 1830년대 초, 대략 1830년에서 1832년 무렵 출판사 니시무라야 요하치(에이주도)에서 나왔습니다. 후지산을 이런저런 자리에서 바라본 풍경 연작인데, 제목은 서른여섯 경치였지만 인기를 끌자 열 점이 더해져 실제로는 46점이 됐어요.

이 연작의 파랑은 유난히 깊습니다. 당시 수입 안료였던 프러시안 블루, 일본에서 '베로 아이'라 부르던 파랑을 본격적으로 쓴 덕분이에요. 그전의 판화에서는 볼 수 없던 깊은 파랑이 하늘과 바다를 채웠습니다.

연작에서 〈파도〉와 함께 자주 꼽히는 대표작으로는 〈개풍쾌청(凱風快晴)〉과 〈산하백우〉가 있습니다. 〈개풍쾌청〉은 흔히 '붉은 후지'라는 별명으로 불려요.

가쓰시카 호쿠사이, 개풍쾌청(凱風快晴), 1830~32년경, 다색 목판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가쓰시카 호쿠사이, 〈개풍쾌청〉(통칭 '붉은 후지'), 1830~32년경. 〈후지산 36경〉 연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흰 구름이 비늘처럼 줄지은 파란 하늘 아래, 붉게 물든 산이 화면 오른쪽을 가득 채우고 기슭에는 숲이 점점이 번져 있습니다. Public domai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개풍쾌청〉에서 후지산은 〈파도〉와 정반대 자리에 섭니다. 산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나머지는 하늘과 구름, 기슭의 숲 정도예요. 같은 연작 안에서 후지산은 이렇게 화면의 전부가 되기도 하고 파도 사이에 숨기도 합니다. 마흔여섯 장에 걸쳐 호쿠사이가 바꾼 것은 산이 아니라 산을 바라보는 자리였어요.

〈호쿠사이 만화〉와 '그림에 미친 노인'

전성기가 늦게 왔다고 그 앞이 비어 있던 것은 아닙니다. 1814년, 스케치 모음집 〈호쿠사이 만화(北斎漫画)〉의 첫 권이 나와요. 사람과 동물, 거리의 풍속, 귀신까지 온갖 것을 그린 그림이 수천 점 담겼습니다. 모음집은 권을 거듭해 모두 15권으로 전해지고, 마지막 권은 호쿠사이가 세상을 떠난 뒤에 간행됐어요.

제목의 '만화'라는 말에 눈이 먼저 갑니다. 여기서 만화는 흔히 '붓 가는 대로 그린 그림'쯤으로 풀이돼요. 글자가 같다고 해서 오늘날의 만화와 곧장 이어 붙이기는 조심스럽습니다.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남다릅니다. 화가로서 쓰는 이름인 화호를 평생 서른 번 넘게 바꿨고, 이사도 아흔 번 넘게 했다고 전해져요. 말년에 그가 쓴 화호가 '가쿄로진 만지(画狂老人卍)', 풀어 쓰면 '그림에 미친 노인'입니다.

그 이름에 걸맞은 글이 1834년부터 나온 〈후지산 백경〉의 발문에 남아 있어요. 그는 일흔 전에 그린 것은 보잘것없었고, 일흔셋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조금 깨친 바가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백열 살이 되면 점 하나 획 하나가 살아 움직이게 되리라는 취지의 말을 덧붙였어요.

그 곁에는 딸 가쓰시카 오이(葛飾応為)가 있었습니다. 오이 역시 화가였고, 말년의 호쿠사이 곁에서 함께 작업했다고 전해집니다.

일흔 전의 그림은 보잘것없었다고 적은 화가가, 바로 그 일흔 무렵에 모두가 아는 파도를 내놓았습니다.

파도가 바다를 건너다

1850년대 일본이 개항한 뒤, 우키요에는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인상주의 화가들의 눈을 흔들어 놓아요. 평평하게 칠한 색면, 인물이나 사물을 화면 끝에서 과감하게 잘라 내는 구도, 공간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시선이 그들에게는 낯설고 새로웠거든요. 유럽 미술에 번진 이 일본풍의 흐름을 자포니즘(Japonisme)이라고 부릅니다.

마네와 드가, 모네는 우키요에를 모으거나 자기 화면에 끌어들였습니다. 드가, 무대 뒤를 그린 관찰자에서 무용수를 화면 가장자리에서 뭉텅 잘라 내던 구도가 기억나시나요. 그 낯선 구도의 배경으로 사진과 나란히 꼽히는 것이 바로 우키요에예요. 살롱에서 싸우기를 고집한 마네, 살롱을 떠나지 않은 혁명가도, 빛을 좇아 밖으로 나간 모네, 빛을 그린 사람도 이 판화들을 가까이 두고 본 화가였습니다.

반 고흐는 아예 붓으로 옮겨 그렸어요. 1887년, 같은 우키요에 화가인 히로시게의 판화를 유화로 모사했거든요. 그렇게 나온 그림 가운데 하나가 〈꽃 피는 자두나무〉입니다. 남프랑스 아를로 내려가기 한 해 전의 일이에요. 그의 짧고 뜨거웠던 10년은 반 고흐 입문: 10년 동안 2,100점을 남긴 사람에 따로 있습니다.

파도는 그림 밖으로도 건너갔습니다. 작곡가 드뷔시의 관현악곡 〈바다〉가 1905년 악보로 처음 나왔을 때, 그 초판 표지를 장식한 것이 바로 이 파도였어요. 수입 안료로 깊어진 파랑이, 이번에는 판화에 실려 바다 건너로 나간 셈입니다.

번호 없는 판화 앞에서

미술관에서 〈파도〉를 만난다면 알아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벽에 걸린 그것은 세상에 한 점뿐인 원화가 아니라, 수천 장 찍힌 인쇄본 가운데 한 장이라는 사실이에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도, 대영박물관에도 저마다의 〈파도〉가 있는 이유입니다. 이 글에 실은 두 점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인쇄본이에요.

오늘날의 판화와 다른 점도 있습니다. 우키요에에는 에디션 번호가 없어요. 몇 장만 찍겠다고 약속하고 한 장 한 장에 번호를 매기는 에디션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그림입니다. 그 약속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에디션 넘버 읽는 법에서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같은 판화라도 인쇄본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릅니다. 언제 찍혔는지, 색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종이가 어떻게 보관돼 왔는지에 따라 미술관마다 걸린 한 장의 인상이 달라져요. 〈개풍쾌청〉만 해도 미술관 온라인 소장품에서 인쇄본 여러 장을 나란히 놓고 보면, 산의 붉은 기와 숲의 색부터 조금씩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번호가 없다고 값이 매겨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2023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는 〈파도〉의 인쇄본 한 장이 수십억 원대에 팔리기도 했어요.

그러니 호쿠사이의 판화 앞에 서면 먼저 후지산을 찾아보세요. 화면의 전부를 차지할 때도 있고, 파도 사이에 손톱만 하게 숨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산을 찾았다면 다음은 파랑이에요. 수입 안료 하나가 판화의 빛깔을 바꾼 흔적이 그 깊은 색에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캡션의 소장처를 확인해 보세요. 같은 그림이 다른 미술관에서는 어떤 얼굴로 걸려 있을지 떠올려 보면, 판화를 보는 재미가 하나 더 생깁니다.

일흔셋에야 비로소 조금 깨쳤다고 적은 화가의 파도는 그렇게 한 장 한 장 찍혀 세계로 흩어졌어요. 그리고 그 파도 뒤에서, 후지산은 여전히 작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는 왜 유명한가요?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후지산 36경〉 연작 가운데 한 장이에요. 후지산을 그리는 연작인데 거대한 파도가 주인공 자리에 서고, 후지산은 파도 사이에 작게 물러나 있는 역전된 구도가 핵심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이미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드뷔시의 관현악곡 〈바다〉 초판 악보 표지에도 쓰였어요.

후지산 36경은 정말 36점인가요?

제목은 서른여섯 경치지만 실제로는 46점입니다. 1830년대 초 출판사 니시무라야 요하치(에이주도)에서 나온 연작이 인기를 끌자 열 점이 더해졌어요. 당시 수입 안료였던 프러시안 블루를 본격적으로 써서 이전에 없던 깊은 파랑을 낸 연작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우키요에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에도 시대의 다색 목판화인 우키요에는 분업으로 만들었어요. 화가(에시)가 밑그림을 그리면 조각가(호리시)가 판을 새기고, 인쇄공(스리시)이 종이에 찍었습니다. 무엇을 만들지 기획하고 완성된 판화를 파는 일은 출판사(한모토)가 맡았어요. 판화라서 같은 그림이 수천 장씩 찍혔습니다.

호쿠사이 판화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판화라서 같은 그림의 인쇄본이 여러 미술관에 나뉘어 있어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런던 대영박물관이 대표적입니다. 에디션 번호가 없고 인쇄본마다 색과 상태가 조금씩 달라요. 전시 여부는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 각 미술관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세요.

호쿠사이와 인상주의는 무슨 관계인가요?

1850년대 일본 개항 이후 우키요에가 유럽으로 건너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줬어요. 이 흐름을 자포니즘이라 부릅니다. 평평한 색면과 과감하게 자르는 구도, 비스듬한 시선이 새로웠고, 마네와 드가, 모네는 우키요에를 모으거나 화면에 참조했어요. 반 고흐는 1887년 히로시게의 판화를 유화로 옮겨 그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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